리바이어던(Leviathan) 제 3 장

 

리바이어던(Leviathan) 제 2 장에서…




리바이어던(Leviathan) 


제 3 장




퍼시피쿠스 분절(Segmentum Pacificus)

레기움 성계(Regium System) 

인커럽티블(Incorruptible) 지휘 갑판, 



"타이러스(Tyrus) 지대장님."


함교에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랏수스(Krassus) 궤도 통신 중계기로부터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인커럽티블(Incorruptible)의 함교는 어찌 보면 대검처럼 보였고, 

또 어떻게 보면 대성당의 십자형 구조처럼 보이기도 했다.

타이러스(Tyrus)의 지휘석은 칼날과 손잡이, 

그리고 신도석과 좌우 날개가 교차하는 부분에 위치했다.

타이러스(Tyrus)가 고개를 들어 초승달처럼 굽어있는 화면을 주시하자,

화면의 번쩍이는 불빛이 그의 얼굴에 비쳤다.

과거 성난 괴물의 산성 침 공격을 받아 엉망이 된, 

타이러스(Tyrus)의 피부 위로 모니터의 녹색 불빛이 비춰지자, 

그렇지 않아도 흉측한 그의 얼굴에는 한층 더 기괴함이 감돌았다.


"목표의 좌표는 확보했나?"


함교에는 타이러스(Tyrus) 외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해군 사관과 하급 선원들, 붉은 로브를 갖춰 입은 기술 사제들, 

그리고 장갑복을 차려입은 울트라마린(Ultramarine) 등등, 

다양한 인물들이 섞여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이들 모두는 브라운관 텔레비전 화면처럼 굽어있는 모니터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소식을 올려다보며 약속한 듯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녹색 빛을 뿜어내는 화면은 통통한 날개 달린 천사(Cherub)의 배에 달려있었는데,

배에 모니터를 달고 윙윙거리며 지휘석 위를 날아다니는 이 천사는 

털 하나 없이 반지르르한 피부를 가진 태아처럼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요, 지대장님.

그게 서… 설명하기 힘듭니다."


정적을 깨고 새된 목소리가 답변했다.

고작해야 살짝 귀에 거슬리는 불분명한 목소리에 불과했지만, 

타이러스(Tyrus)는 자신이 심한 전파 방해 속에서 항행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걸 일상적 오류라 넘기지 않았고, 

오히려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즉시 알아차렸다.

잔뜩 얼굴을 찌푸린 작은 천사는 똥짤막한 날개를 신경질적으로 퍼덕였다.


"최선임 전탐병(Master Augurum),"


타이러스(Tyrus)는 짧게 물었다.


"그들이 정확히 뭐라고 하는지 말하라." 


"그들이 말하길 자신들의 탐지 장비에는 외계 생명체의 흔적이 전혀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크랏수스(Krassus)의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적의 공격한다는 기미가 전혀 없습니다."


타이러스(Tyrus)는 지휘석 화면에서 흘러 지나가는 상형문자들의 문자열을 다시 확인했다.


"생체 전함 하나도 아니고, 함대 전체가 사라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전문이 왜곡되었을 가능성은 없나?

자네가 해석을 잘못했을 가능성은 없고?"


"없습니다, 지대장님."


천사(Cherub)는 불벼락이 떨어질 거라 예상했는지, 

고무공처럼 검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더욱 높이 날아올랐다.


"무선 방해 휴지기에 주고받은 통신입니다.

고작 몇 초 동안이었지만 주파수 도약에 성공했고, 

그사이 저희 성가대원(Chorister)들과 전파 방해 없이 직접 통신을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근방에서 외계인 함대를 탐지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베타 트웰브(β 12) 수정점(Scry) 감시 기지와도 연락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원거리 감시 기지에서도 특이사항이 전혀 없다고 전해왔습니다."


타이러스(Tyrus)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지휘석에서 내려오자,

그의 강철 장화가 함교 바닥에 부딪히며 금속성 소음이 났다.

그는 묵묵히 함교 끄트머리에 있는 견시(見視)용 창문(Oculus)까지 걸어갔다.

창문은 인접한 우주의 넓은 부분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레기움(Regium)을 출발한 이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었다.


타이러스(Tyrus)는 먼지구름과 에너지 파동들이 일으키는 소용돌이를 바라보았다.

타이라니드(Tyranid)의 존재는 전탐병들을 장님으로 만들어버렸고,

직접적인 시각적 식별도 불가능하게 했다.


"타이라니드(Tyranid)놈들이 여기 있어."


타이러스(Tyrus)는 함교에서 왔다가 갔다가 하며 어깨를 빙빙 돌렸다.

그럴 때마다 장갑복의 섬유 다발들이 움직이고, 금속이 긁히면서 철컥거렸다.


"분명히 있어."


타이러스(Tyrus)는 함교에 출석하고 있는 울트라마린(Ultramarine)들 중,

파란색 장갑복을 입지 않은 형제를 바라보았다.

불티스(Vultis)는 의생물학자(Apothecary Biologis)였다.

의생물학자는 신비로운 진단 장비와 수술 장비가 부속된, 

광택이 나는 깨끗한 흰색 장갑복을 입고 있었다.

그의 백팩에는 회전식 톱과 집게가 매달려있었고,

원통형 격리 샘플 채집통들이 허리춤에서 덜커덕거렸다.


"불티스(Vultis) 형제여, 현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자네가 실수했을 수도 있는가?"


불티스(Vultis)는 즉각 답변하지 않고,

날아다니는 천사(Cherub)를 올려다보았다.


"불티스(Vultis)?"


타이러스(Tyrus)가 답변을 재촉했다.

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조금 높아졌다.


불티스(Vultis)는 고개를 저었다.


"주변 하위구역(Subsector)들과 비교했을 때, 

크랏수스(Krassus)는 가장 생물량이 많은 곳입니다.

외계인들은 분명 이리 향해야 해요.

제가 타이라니드(Tyranid)들에 대해 아는 걸 모두 종합해 볼 때,

저들은 가장 큰 식량원을 최우선 공격 목표로 삼는 포식 우선 형태를 보입니다.

그런 저들이 크랏수스(Krassus)를 그대로 두고, 우회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실제로 여기 그들이 없지 않나."


고개를 뒤로 젖힌 불티스(Vultis)는 눈을 감고는 몇 초 동안 고요히 생각에 잠겼다.


"지대장님, 제가 가진 이 외계 종에 대한 지식은 매우 단편적입니다.

그리고 대상에 대해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한 자들이 보통,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요.

비록 제가 수십 년간 이들에게 매달려 연구했다지만,

이 외계 종에 대한 기본적인 생태에 관해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해할 뿐입니다.

저는 이들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했는지, 

아니면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는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는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저들이 주변 환경에 맞춰 초고속으로 진화할 수 있는 개체라는 가설이 있지요.

즉, 외부 자극에 따라 즉각, 정신적, 혹은 육체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말을 마친 불티스(Vultis)는 

그 진위가 모호하여 논란 중인, 

교승(敎僧; Magi)들과 외계생물학자(Xenobiologian)들의 발표와 논문들을 

혼자 중얼거리며 되새기기 시작했다.


"불티스(Vultis) 형제여,"


타이러스(Tyrus)가 다시 물었다.


"그럼, 형제는 이게 초고속 진화의 결과라고 생각하는가?"


불티스(Vultis)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가진 초고속 진화 잠재 능력에 대한 가설은 제 연구 결과와 매우 부합합니다.

그리고 만약 이 가설이 진실에 가깝다면,

저들은 새로운 포식자-피식자 형태를 습득한 신규 변종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연구해온 과거의 타이라니드(Tyranid)와 달리,

포식 우선 형태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구성의 섭식 형태를 보여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실 저도 타이라니드(Tyranid)의 생태에 대해, 거의 무지합니다.

저들의 생태는 말 그대로 더 많은 탐구가 이루어져야 할 미지의 영역이에요.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겠군요.

이들이 이런 독특한 행동을 취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의생물학자는 화면을 바라보더니, 룬 문자 몇 개를 입력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전 근거 없는 추론을 정말 혐오합니다만, 이건 일종의 계략처럼 보이는군요."


"함정이라고?"


"아마도요."


타이러스(Tyrus)는 왔다 갔다 하는 걸 멈추고는 

가장 가까운 견시용 창문(Oculus) 앞으로 다가가서

불티스(Vultis)의 말을 곱씹으며 텅 빈 우주를 내다보았다.


"최선임 전탐병(Master Augurum),"


타이러스(Tyrus)는 잔뜩 풀이 죽어 있는 천사(Cherub)에게 직접 물었다.


"마지막으로 전역 탐지를 수행했을 때, 어떤 좌표들을 이용했나?"


"제공해주신 좌표들을 이용했습니다, 지대장님.

성계 변경에서 크랏수스(Krassus)로 향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좌표들을 탐지했습니다."


"360도 전방위 탐지를 수행하지 않았나?"


"아닙니다, 지대장님, 

게다가 그래봤자 지금 상황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겁니다.

신뢰할 수 있는 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습니다.

잠깐이었지만 통신 중계기와 직접 연결되었던 것도 기적이었습니다."


"어찌 됐건 다시 시도해보게.

이번엔 전방위 탐지로 전환해서 탐지해.

사용할 수 있는 심우주(Deep-void) 탐지기를 전부 사용하도록.

최우선 사항이니,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게."


"알겠습니다, 지대장님."


백색 소음만 남기고 모든 탐사 신호가 일시적으로 끊어졌다.

천사(Cherub)는 체격에 비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작은 날개를 퍼덕이며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해군 당직 사관이 다가왔다.


"지대장님,"


그녀는 타이러스(Tyrus)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타이러스(Tyrus)는 고개를 흔들며 다시 앞뒤로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외계인 놈들은 성계(System)에 침입한 이후, 크랏수스(Krassus) 방면으로 직행했다.

거기에다 놈들의 가장 큰 생체 전함은 우리의 전투 순양함만큼 광대하지.

아무리 전파 방해가 강하다고 해도, 

지금쯤이면 놈들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야 마땅해."


타이러스(Tyrus)는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는 예전에 타이라니드(Tyranid)와 마주쳤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무심하게 펼쳐지는 우주적 복마전에 눈살을 찌푸렸다.


"지대장님,"


갑자기 그늘에서 튀어나온 천사(Cherub)가 쇳소리로 다급하게 외쳤다.


"지대장님 말씀이 옳았습니다.

외계인 함대의 위치가 확인되었습니다.

놈들은 생물 자원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멀어지고 있어요.

놈들의 행동이 우리의 예상을 벗어났기 때문에 발견이 늦었습니다."


타이러스(Tyrus)는 불티스(Vultis)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건 함정이군.

놈들이 우릴 향해 오고 있어.

전원 즉시 방-"


"아니요, 지대장님.

말씀을 끊어 죄송합니다만, 저들은 우리 함대를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저들은 우리를 칠 수 있었습니다.

신의 기술이라 치부될 정도의 강력한 방해 전파를 만들어 자신들의 움직임을 숨기고, 

우리가 방심한 사이 몰래 우리를 급습할 수도 있었지만,

저들은 그냥 우리를 우회해 버렸습니다.

저들은 성계(System) 중심부로 향하고 있어요.

저들의 목표는 레기움(Regium)입니다."


"레기움(Regium)?"


타이러스(Tyrus)는 불티스(Vultis)를 응시하며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우리 모두 속았습니다."


갑자기 뭔가 멀리에서 굉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지휘 갑판 전체가 어둠에 휩싸였다.


잠시 후, 

곳곳에서 비상사태임을 알리는 경고등이 하나씩 켜지더니,

거의 모든 경고등이 점멸하면서 함교 전체가 명멸하는 불빛에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시끄러운 경고음이 함교를 가득 메웠다.


"지대장님,"


해군 장교 한 명이 자신의 좌석에 달린 화면을 바라보며 긴장된 목소리로 외쳤다.


"우현 공허 방어막(Void Shield)이 방금 꺼졌습니다.

발전기 고장으로 보입니다.

좌현 발전기는 버티려고 노력 중입니다만, 꺼지기 직전입니다."


"우현 포탑이 모두 침묵했습니다. 응답이 없습니다."


다른 장교가 자신의 화면을 뚫어져라 주시하며 소리쳤다.


"플라스마 항행 장치가 먹통입니다."


다급하게 외치며 타이러스(Tyrus)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함선 전체 동력 소실."


"좌현 발전기에 과부하가 걸리기 전에 기동을 중지해."


타이러스(Tyrus)가 지휘석 의자 옆에 걸려있던 헬멧을 낚아채며 외쳤다.

지대장은 함교 밖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기면서 헬멧을 착용했다.

그의 헬멧 안에서도 여러 개의 경고 표지가 동시에 울리고 있었다.

지대장은 내장된 무선 채널을 열고 상황을 전파했다.


"적의 강제 승선이다.

침입 지점은 하나로 추정되며,

공허 방어막(Void Shield)이 소실되었다."


타이러스(Tyrus)는 완전히 당했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를 공격해 온 게 뭐든 간에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반복한다. 우리는 강제 승선 공격을 당했다.

무기 체계와 방어막이 무력화되었다.

행동할 수 있는 모든 전투 인력은 즉시 엑카토(Ekato) 갑판으로 이동하라."


타이러스(Tyrus)는 여기까지 말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놈들이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수작질을 부리든 간에 

함부로 덤벼든 자만심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자.

사냥감이 제 발로 찾아왔다."


함선이 완전히 침묵하는 동안 전언을 마친 지대장이 통로를 내달리는 사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난 울트라마린(Ultramarine) 형제들이 달리는 지대장과 합류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동력실의 굉음이 사라지자, 

함선에는 익숙지 않은 정적이 짙게 깔렸다.

멀리서 긴급 상황임을 알리기 위해 울리는 경고음과 

가끔 긴장한 철판이 뒤틀리며 비명을 지르는 소리만 들렸다.

동력을 잃은 인커럽티블(Incorruptible)은 이제 정처 없이 표류하고 있었다.


연기가 점점 자욱해지는 복도를 역으로 따라간 지대장에게 

멀리서 더 많은 폭발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사실상 폭발음이라기보다는 뭔가가 금속을 찢어발기는 소리에 가까웠다.

지대장은 헬멧 안에 작게 표시된 지도를 통해 형제들의 위치를 살폈다.


"바으라카(Baraca) 형제.

형제가 함포 갑판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군.

전황이 어때 보이는가?"


무선에는 백색 소음이 잠시 깔리더니,

심하게 왜곡되어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만 간간이 들렸다.


"다시 말해보게."


타이러스(Tyrus)가 속도를 높이며 다시 보고하라 압박했다.


"대기 조절 장치가…" 


지직거리는 소음 사이로 다시금 보고가 들리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다른 무선과 섞이면서 보고가 잠시 잘렸다.


"로크리(Locri)와 캐스트루스(Castrus) 사이의 연결통로로 진입을 시도 중이며, 전 어찌ㅎ-"


"뭔가 거대한 게 보인다.

방금 저게 군목실(Reclusium)을 종잇장처럼 찢어-"


"도밋흐(Domith) 형제, 이쪽으로 화력 지워-"


"엑카토(Ekato)로 급행 중이다.

하지만 이곳은 함선의 인공 중력이 사라졌다.

반복한다. 중력 생성장치 이상으로 중력이 불안ㅈ-"


"바으라카(Baraca) 형제, 얼마나 가까이에 있나?"


"연기가 이상하게 움직인다.

마치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커다란 어둠처럼 행동한다.

내 생각에 이건 분명-"


타이러스(Tyrus)는 사태에 뭔가 대응을 하려고 했지만,

너무 많은 인원이 동시에 발신하는 응급 통신이 

불협화음처럼 한데 섞이는 바람에 일단 채널을 끊는 수밖에 없었다.


타이러스(Tyrus)는 화면에 지도를 소환해,

함포 갑판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통로는 앞선 곳보다 더 두텁게 연기가 깔려 있었다.

지대장은 잠시 고개를 돌려 뒤따르는 형제들이 잘 따라오는지를 확인한 뒤,

볼트 소총(Bolt Rifle)의 탄약이 만재한 지를 보고, 탄알집을 약실에 꽂아 넣고는

자신과 다른 장갑복의 밀폐가 완벽한지를 살폈다.

의생물학자(Apothecary Biologis) 불티스(Vultis)도 그의 뒤를 따르면서 

업솔버 볼트 권총(Absolver Bolt Pistol)의 장전을 확인하고 조준 장비를 살피고 있었다.

지대장을 따르는 대열의 맨 끝에는 함선의 무장 경비병인 보이즈맨(Voidsman) 무리가

진공 상태에 대비하기 위해 밀폐형 재호흡기(Rebreather)를 착용한 채, 

레이저 기반 무장을 완비하고는 

스페이스 마린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나의 커다란 어둠처럼 행동한다라.


타이러스(Tyrus)는 바닥에 두껍게 깔린 연기를 바라보았다.

그건 일견 연기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연기는 마치 손톱으로 바닥을 잡고 이동하듯, 기이한 형태로 퍼지고 있었다.


타이러스(Tyrus)는 이게 일종의 화학 공격이 아닌지 의심했지만,

장갑복의 화학 공격 감지 장비는 연기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바닥에 낮게 깔리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로 뭉쳐 커지는 검은 연기는 분명 이상해 보였다.


타이러스(Tyrus)는 열리지 않는 방폭문들 때문에 쾌진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대장은 문 개폐장치를 두드렸지만, 반응이 없었다.


"사이렌(Cyren),"


타이러스(Tyrus)는 형제의 이름을 부르며 방폭문 앞에서 물러섰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플라스마 인시너레이터(Plasma Incinerator)를 든 형제가 앞으로 나와,

통로를 강렬한 빛과 소음으로 가득 채웠다.

공기가 다시 맑아졌을 때, 

문은 이미 녹아내린 쇳물 더미로 변해버린 뒤였다.


그때, 연기와 깜박이는 불빛에 반쯤 가려진 형태가 타이러스(Tyrus)에게 달려들었다.

뭔가를 식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지대장은 자신에게 돌진하는 

곱사등 같은 모습을 하고 두 다리가 달린 놈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놈이 바닥으로 늘어뜨린 네 개의 팔 끝단에는 구부러진 발톱이 달려있었다.

근육질 몸매 위에 갑옷처럼 딱딱한 껍데기를 두른 놈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적이다!"


지대장은 포효하고는 달려드는 적을 눈으로 추적하며 권총을 뽑아 들었다.

타이러스(Tyrus)가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그의 뒤에서 날아온 볼트(Bolt) 탄환들이 공기를 갈랐다.

지대장은 휘파람 소리 같은 총성을 들으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대장의 손안에서 권총이 불을 뿜기도 전에 그의 전우들은 그와 함께하고 있었다.

굳이 그가 말로 지시하지 않아도 형제들과 그는 이심전심으로 통했다.


천둥이 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울트라마린(Ultramarine) 형제들의 일제 사격이 불을 뿜자,

지대장에게 마수를 뻗던 외계인은 그 반동으로 허우적대며 통로 안으로 강제로 밀려났다.


더 많은 놈들이 그늘 속에서 튀어나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불어닥치는 광풍처럼

고통이나 두려움이 없는 이들은 한데 뭉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 나왔다.


이들이 타이라니드(Tyranid)가 아닌 다른 적들이었다면,

타이러스(Tyrus)도 그들이 용맹하리라 생각했겠지만,

타이라니드(Tyranid)의 용기를 칭찬한다는 것은 질병이 용감하다고 여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놈들을 '적'이라 표현하는 것도 잘못이다.

저것들은 돌림병이다.

강철과 화염으로 정화할 수 있는 이란 말이다.


타이러스(Tyrus)는 한 발씩 주의 깊게 방아쇠를 당겼다.

눈앞의 전장에 너무 몰두한 지대장은 

후방은 전우들이 지켜준다는 생각에 뒤쪽 움직임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갑자기 지대장의 등 뒤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금속이 찢겨나갔다.

무방비 상태로 당한 지대장은 간신히 넘어지진 않았지만, 자세가 무너졌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린 지대장의 눈앞에 믿기 힘든 광경이 보였다.

함선에 직접 주력 전차가 들이받은 것처럼 

격벽이 우그러지다 못해 갈라져서 우주로 통하는 큰 틈새가 보였다. 

작은 불씨들이 연기 사이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지대장은 바닥에 쓰러진 울트라마린(Ultramarine) 형제들을 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쓰러진 형제들의 장갑복은 함선의 격벽처럼 찌그러지거나 잔인하게 잘려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잔해를 향해 무기를 겨눈 채, 구멍에서 멀어지려고 애쓰고 있었다.


"지대장님!"


울트라마린(Ultramarine) 형제 한 명이 소리쳤다.

더 많은 타이라니드(Tyranid) 무리가 해일처럼 금속 바닥을 세차게 차며 달려오거나,

공중으로 몸을 날려 공기를 가르며 뛰어들었다.


타이러스(Tyrus)와 살아남은 병력이 재차 사격을 시작했다.

이들은 타이라니드(Tyranid)가 키틴질 조각으로 변해버릴 때까지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타이라니드(Tyranid) 제 2 파를 막아낸 타이러스(Tyrus)는 쓰러진 형제들을 살피러 다가갔다.

지대장은 쓰러진 형제 중 한 명이 즉사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지대장이 명령을 내리려고 불티스(Vultis)를 바라보는 순간,

또다시 금속으로 만든 무언가를 찢어내는 커다란 소음이 들려왔다.

지대장은 소음의 근원을 바라보았다.


"저게 뭔지 아무도 못 봤나?"


대부분이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불티스(Vultis)가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형태만 봤습니다.

추측건대 타이라니드(Tyranid)의 일종입니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크고, 비정상적으로 빠릅니다."


타이러스(Tyrus)는 머릿속으로 함선의 청사진을 떠올리면서,

저 말도 안 되는 공격으로 파손된 부위가 어디인지를 따져보았다.


"저게 뭐든 간에 함포 갑판으로 향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타이러스(Tyrus)는 방폭문 구멍을 통과해 다음 방으로 진행하면서,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방폭문 구멍과 연결된 곳은 길고 좁은 식당이었다.

그들은 앞을 막는 의자와 탁자들을 밀치면서 달려 나갔고,

어지러운 잔해들을 지나 연기로 가득 찬 다음 통로로 향했다.


타이라니드(Tyranid)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놈들은 어둠 속에서 통로를 향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울트라마린(Ultramarine)들은 이번에도 볼트(Bolt) 탄환을 비처럼 흩뿌렸다.

하지만 외계인의 숫자가 지난번보다 훨씬 많았기에 몇 놈이 쓰러지기 전에 반격했다.

놈들이 쓰는 탄약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건 스페이스 마린 장갑복의 외피를 파고들 정도로 강력했다.

울트라마린(Ultramarine) 몇 명이 상처를 감싸며 뒤로 물러섰다.

탄입구를 움켜쥔 파란 손가락들 사이로 붉은 피가 울컥 뿜어져 나왔다.


타이러스(Tyrus)는 적들 사이로 수류탄을 던져 넣고, 

폭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혼란에 빠진 놈들에게 돌진했다.

그의 형제들이 묵묵히 지대장의 뒤를 따라 돌격했다.

그때 다시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그에 비하면 지대장이 던진 수류탄의 폭음은 새 발의 피처럼 여겨졌다.

바닥에 내동댕이치듯 던져진 타이러스(Tyrus)는 

충격의 여파로 하마터면 권총을 손에서 놓칠 뻔했다.

지대장이 돌아보자, 함선 격벽에는 우주가 훤히 보일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고,

더 많은 울트라마린(Ultramarine) 사상자가 바닥에 누워있었다.


"황제시여,"


지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섰다.


"이게 대체 무슨?"


일부 살아남은 타이라니드(Tyranid)가 사격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타이러스(Tyrus)는 그들을 완전히 무시하고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격벽을 뜯어내는 바람에 생긴 거대한 구멍으로 다가갔다.


"뭔가 우릴 가지고 놀고 있군요,"


불티스(Vultis)가 자기 갑옷에 내장된 장비 중 하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치고 빠지고 있어요."


타이러스(Tyrus)는 나머지 타이라니드(Tyranid)를 향해 발포했다.

놈들 중 하나가 벌집이 되었음에도 멈추지 않고 천천히 지대장에게 기어 오자,

지대장은 전투용 단검을 뽑아 놈의 머리를 단칼에 베어버렸다.

지대장이 끈질겼던 놈의 목을 치자, 

심각한 부상에도 굴하지 않던 다른 개체들이 

갑자기 온몸을 부르르 떨며 경련하더니 바닥으로 무너져내렸다.


"이거 전형적인 반응이 아닌데, 그렇지 않나?"


타이러스(Tyrus)의 말에 불티스(Vultis)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생물학자는 방금 죽은 타이라니드(Tyranid)의 시체 옆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극도로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방금 지대장께서 이 외계인의 목을 쳤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셨겠지요?

주위의 다른 녀석들이 이 외계인의 죽음에 반응했습니다."


의생물학자는 따끈따끈한 시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방금 지대장님이 자른 부분은 대가리가 아니었습니다.

보세요, 아직 머리가 붙어있지요.

이건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종입니다."


의생물학자는 방금 쓰러진 타이라니드(Tyranid)의 시체를 들어 올린 뒤, 

가지를 치듯 거침없이 시체 주변을 잘라냈다.

그러자 목이 잘린 큰 타이라니드(Tyranid)의 시체에 붙어있던 작은 녀석이 드러났다.


작은 녀석은 아직 숨이 붙어있었고, 

불티스(Vultis)가 채집용 집게로 고정하는 사이,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듯이 허우적대며 몸부림쳤다.

의생물학자는 장갑복에 고정된 드릴로 놈의 머리 쪽 껍데기를 뚫기 시작했다.

드릴이 놈의 껍질을 뚫고 더 깊은 곳을 건드리려는 찰나,

갑자기 주변에 쓰러져있던 타이라니드(Tyranid) 시체들이 다시 살아나려는 것처럼 퍼덕였다.


반사적으로 권총을 들어 올린 타이러스(Tyrus)의 눈에 

일부 타이라니드(Tyranid)가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기다리십시오!"


불티스(Vultis)가 외계인의 체액이 뚝뚝 흐르는 드릴을 멈추고는 소리쳤다.


"다시 해 보겠습니다."


의생물학자가 작은 녀석의 다른 부위에 드릴을 꽂아 넣자, 

더 많은 타이라니드(Tyranid) 시체가 일어서려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놈들은 사지가 잘려 나간 시체 덩이에 불과했지만,

불티스(Vultis)가 작은 타이라니드(Tyranid) 개체를 찔러댈 때마다.

다 부서진 꼭두각시에게 매달린 실을 강제로 잡아 흔들듯이 

토막이 난 시체들이 좀비처럼 꿈틀대며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애를 썼다.


"정말 매력적이군요."


불티스(Vultis)가 손목에 매달린 정보 단말기를 두드리며 외쳤다.


"타이라니드(Tyranid)의 이런 행동에 대한 관측 기록이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일종의 페로몬으로 하위 종들의 행동과 생리를 조절하는 걸까요.

분명 어딘가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의무관(Apothecary) 형제,"


타이러스(Tyrus)가 경고했다.


"함선의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학술 연구는 유보하도록."


불티스(Vultis)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다른 울트라마린(Ultramarine) 형제들 사이로 돌아갔다.

순순히 지대장의 명령에 따랐다지만, 

의생물학자는 벌써, 추후 연구에 쓸 충분한 표본을 격리 샘플 채집통에 확보한 상태였다.


하나의 커다란 어둠처럼 행동하는 연기가 더욱 짙어지면서 시야를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주위를 둘러보며 생존자 점검을 한 타이러스(Tyrus)는 

불티스(Vultis)를 포함하더라도 자신을 따르는 스페이스 마린이 이제 다섯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계속 이동한다,"


타이러스(Tyrus)는 말을 마치자마자, 다른 구멍을 통해 파괴의 흔적을 따라갔다. 

하지만 지대장은 몇 분 만에 진격을 멈춰야 했다.

불타는 잔해 더미에 깔린 두꺼운 격벽이 진행 방향을 막고 있었다.


"이쪽이다!"


타이러스(Tyrus)가 정비용 통로로 통하는 사다리로 우회하며 말했다.

지대장은 회전식 잠금장치를 돌려 개폐장치를 해제하고,

문을 잡아당겨 활짝 열어젖히고는 정비용 통로로 몸을 날렸다.


타이러스(Tyrus)의 군화가 함선 바닥에 막 닿으려는 순간,

함선이 요동치며 한쪽으로 기울었다.

지대장의 귀에 익숙한 거대한 폭발음이 다시 들렸다.

발을 뗀 상황에서 함선이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리는 바람에

지대장은 큰 소리와 함께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지대장님!"


통로 아래쪽에서 지대장을 부르는 울부짖음이 들렸다.

타이러스(Tyrus)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자,

사다리는 물론이고 통로 일부도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지대장의 눈에 보이는 것은 끈적하게 달라붙는 어둠뿐이었다.


"불티스(Vultis)!"


타이러스(Tyrus)가 큰 목소리로 형제들을 찾았다.


"사이렌(Cyren)! 거기 있나?"


타이러스(Tyrus)는 멀리 떨어진 물속에서 웅얼웅얼하는 것 같은 답변을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들의 답변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멀어졌다.


지대장은 이대로 다시 통로 쪽으로 떨어져 볼까도 생각했지만,

폭발의 크기와 남은 통로의 안전성을 가늠해볼 때,

그의 무게를 받아 줄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엑카토(Ekato) 갑판에서 합류하자,"


타이러스(Tyrus)는 최대한 큰 목소리로 외친 뒤,

볼트 권총(Bolt Pistol)을 뽑아 들고는, 몸을 돌려 연기에 삼켜진 정비용 통로를 따라갔다. 

정비용 통로를 내달리는 동안에도 함선은 연이은 충격으로 미친 듯이 흔들렸다.

지대장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선 주파수를 열어 무전을 보냈다.


"세스탚혼(Cestaphon) 형제.

현 위치를 전송하라.

함포 갑판에 도착하면 내게 알리도록.

바으라카(Baraca)?

드리니움(Drinium) 형제?

아무나 응답 바란다, 아무도 없나?"


"타이러스(Tyrus) 지대장님!"


불티스(Vultis)의 급한 목소리가 무선 잡음을 뚫고 들렸다.


"제 생각에 이들의 목표는 지대장님입니다.

제 화면에 동기화된 지대장님의 현재 위치를 띄웠습니다.

도미투스(Domitus) 형제는 사망했습니다.

사이렌(Cyren) 형제도…

하지만 이로써 이들의 행위가 의도하는 목적을 알았습니다…

지대장님도 이제 눈치를 채셨겠지만…

저들은 우리와 지대장님을 분리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이건 마치…

…포식자가 사냥감을 무리에게서 강제로 격리하는 방법과 흡사합니다.

그러니까… 저들은 지대장님을 사냥하려고 합니다."


"뭐가 날 사냥한다고?"


타이러스(Tyrus)의 질문에 울부짖는 듯한 소리와 알 수 없는 소음만이 돌아왔다.


"무슨 일이지?"


타이러스(Tyrus)가 재차 질문했지만,

바로 그때 함선이 다시 심하게 흔들리면서 지대장은 다시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간신히 균형을 잡은 지대장은 정비용 통로를 달려 나갔다.

헬멧 안쪽에 홍수처럼 밀려드는 각종 경보음을 전부 무시하고, 

바닥에 난 구멍과 장애물들을 뛰어넘으면서 앞으로만 줄창 내달렸다.

지대장이 반대편 출구에 막 도착한 순간, 또 다른 폭발이 정비용 통로를 강타했다.

폭압으로 뒤로 밀려난 지대장에게 

갈기갈기 찢어진 플라스틱강(鋼)[Plasteel] 조각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정비용 통로 전체가 무너져 내리면서, 지대장은 통로 아래에 있는 방으로 떨어졌다.

지대장이 떨어진 아래층 발코니가 부서지면서 속도가 좀 줄긴 했지만,

거기서 다시 떨어진 지대장은 바닥에 세게 부딪혔다.

헬멧 안쪽에 더 많은 경고가 떠올랐다.

손상으로 밀폐가 뚫렸다는 경고와 관절부가 틀어졌다는 경고가 추가되었다.


타이러스(Tyrus)는 몸을 굴러 다시 두 발로 일어서고는 권총을 겨눈 채, 자신이 떨어진 곳을 살폈다.

지대장이 떨어진 곳은 커다란 직사각형 형태의 외우주 육안 감시용 전망대였다.

전망대의 한쪽 면에는 

높이만 100 피트[약 30.48미터(m)]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며, 

바깥쪽 틀에 나뭇잎 모양의 장식이 달린 천체 관측창이 있었다.

지대장 주위에는 다양한 크기의 잔해와 잡동사니들이 제멋대로 나뒹굴었고,

작은 조각들은 바닥에 머물러 있는 대신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인공 중력이 꺼졌군."


지대장이 전망대 안쪽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지대장님을 사냥-"


불티스(Vultis)의 목소리가 무선 잡음 사이로 다시 들리다가 사라졌다.

의무관의 목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로 변해 반복되더니, 

시끄러운 소리 속으로 묻혀버렸다.


타이러스(Tyrus)는 시끄러운 경고 화면을 치워버리고, 

헬멧 안에 함선의 청사진을 띄워 현재 멀쩡하게 기능하는 지역을 확인하며,

함포 갑판으로 가는 방법을 다시 찾아보았다.

지대장은 찾아낸 길을 자신의 위치와 대비하여 화면에 계속 표시되도록 설정한 뒤,

재빨리 전망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으로 향했다.


타이러스(Tyrus)가 방을 나서기 전, 

장비한 무기가 멀쩡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잠시 머뭇거리는 순간. 


콰광.


함선이 다시금 떨렸다.

하지만 앞선 충격들과 달리, 

거대한 거인이 망치로 배를 후려갈긴 것처럼 엄청난 충격이 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타이러스(Tyrus)는 자신도 모르게 발을 멈췄다.


이번 폭음은 바로 옆방에서 울려 퍼졌다.


콰광.


더욱 큰 소음이 점점 그에게 다가왔다.


콰광.


타이러스(Tyrus)는 바닥이 너무 심하게 흔들려 서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콰광.


타이러스(Tyrus)는 전망대 끝부분에 있는 벽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소음을 만드는 놈이 누구든 간에, 

저 벽 너머에서 그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때 무전기의 정적을 뚫고 어떤 목소리가 다시금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타이러스(Tyrus) 지대장님."


불티스(Vultis)가 다시 외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없습니다… 지대장님은 함교로 복귀하셔….

…리는 함교로 복귀할 방법이 없습니다…. 

…거기서 당장 피하ㅅ-"


하지만 타이러스(Tyrus)는 물러서기는커녕, 

권총을 들고 소리가 나는 벽으로 당당하게 다가갔다.


콰광.


이제 소리는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음파에 벽이 떨리고, 강화용 철테를 죄어놓은 죔쇠에서 나사가 튀어올 정도였다.


타이러스(Tyrus)는 권총을 들어 올리고 옆으로 서서 벽 한가운데에 조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대장은 몇 초간 권총 조준을 유지한 채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오히려 연속적으로 들리던 폭발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멈췄다.

지대장은 자신이 혼란에 빠진 것은 아닐지 궁금했다. 


혹시 타이라니드(Tyranid)가 발산하는 정신 교란 물질이 

신군(神軍; Adeptus Astartes)의 정신까지도 미혹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지대장은 이대로 권총을 내릴까 하다가, 

지금까지 자신이 타이라니드(Tyranid)와 맞서 싸워왔던 경험을 떠올리며 잠시 머뭇거렸다.

놈들은 대부분 무지성적이라 할 정도로 단순 무식하게 돌격 일변도의 공격을 해왔지만,

아주 가끔 전략적이라 보일 정도로 매우 교묘하게 기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지대장님을 사냥하려고 합니다라.


그게 정말일까?

불티스(Vultis)의 주장이 사실일까?


잠시 벽을 노려보던 지대장은 

무언가가 다른 방향에서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뭔가 거대한 것이 그를 노리고 있었다.

주변을 짓누르는 이 살기는 분명 자신을 향한 것이다.


"난 사냥감이 아니야."


타이러스(Tyrus)는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체인소드(Chainsword)를 허리춤에서 풀러 손에 들고 시동을 걸었다.

체인소드(Chainsword)의 날카로운 톱날이 돌아가면서 만족스러운 함성을 내지르는 동시에,

프로메슘(Promethium)의 독특한 냄새가 전망대 안을 가득 채웠다.


지대장은 벽 반대편에서 꿈틀대는 움직임을 감지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고 거대한 질량을 가진 놈이었는지, 

팽팽하게 긴장된 바닥이 비명을 질렀다.


타이러스(Tyrus)는 체인소드(Chainsword)를 좌우로 번갈아 가며 쥐었다.

지대장의 귀에 느리고 깊은 숨소리가 들렸다.


"그래, 와봐,"


지대장이 속삭였다.


"잘나신 그 상판 좀 보자."


별안간 타이러스(Tyrus)의 눈앞에서 벽이 폭발했다.

잘게 잘린 플라스틱강(Plasteel) 조각이 지대장의 장갑복을 강타하는 바람에

지대장은 누가 배를 강하게 걷어찬 것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뒤로 재주넘듯 몸을 튼 지대장의 입안에서 피 맛이 났다.

자세를 교정한 지대장은 자욱한 먼지들 사이로 볼트(Bolt) 탄환을 쏘아댔다.


거대한 형상의 괴물이 타이러스(Tyrus)의 눈에 들어왔다.

놈은 어찌나 덩치가 컸던지, 전망대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고개를 숙여야 했다.

지대장은 황당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크기의 존재를 처음 본 순간,

자신이 민담 속에서 튀어나온 신화적인 괴수와 마주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지옥 불에 감싸여 나락의 불빛을 내뿜는 전설 속의 악룡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이제 뒷다리로 똑바로 선 놈은 

단단한 갑옷을 두른 커다란 꼬리를 발굽 주위로 휘두르고 있었다.

타이러스(Tyrus)는 전투용 기도문을 읊조리며 마음을 가라앉힌 뒤에야,

현재 상황을 명확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놈은 전설에 나오는 용이 아니었다.


저건 타이라니드(Tyranid)다.


그러자 곤충처럼 분절로 나뉜 몸 위에 

보라색과 상아색 갑주를 단단히 두른 놈의 모습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사실 타이러스(Tyrus)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놈처럼 거대한 크기의 타이라니드(Tyranid)를 본 적이 없었다.

담대한 지대장이라 할지라도 

역대급 규모를 자랑하는 놈의 크기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똑바로 선 놈의 덩치는 바로 옆 전망대의 천체 관측창보다도 더 컸다.


타이러스(Tyrus)도 쉽사리 놈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한 명의 사람과 한 명의 괴물은 마주 보며 서로를 탐색했다.


"그러니까 네가 날 사냥하겠다고."


타이러스(Tyrus)는 타이라니드(Tyranid)의 얼굴을 샅샅이 뜯어보면서

놈의 눈이 그토록 지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리고 놈은 분명, 사물을 분간하는 인식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놈은 그가 누군지를 분명히 알아봤다.

그리고 나머지 동족들이 레기움(Regium)으로 질주하는 동안,

이놈은 그를 잡기 위해 여기에 왔다.

혼자서.


타이라니드(Tyranid)는 갑자기 자세를 바꾸더니, 

발톱 하나를 들어 바닥을 두들겼다.

놈은 아예 타이러스(Tyrus)에게서 눈을 돌리고는 

자신이 위치한 전망대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놈은 방안의 잔해더미와 부서진 기계를 하나씩 살피더니,

벽 한쪽을 차지한 관측창 밖으로 우주를 내다보았다.

놈은 명백히 타이러스(Tyrus)나, 

그가 가진 무기 따위에는 위협을 느끼지 않는 게 분명했다.


타이러스(Tyrus)는 괴수가 자신을 무시하는 이 틈을 이용해,

혹여 있을지도 모르는 놈의 약점이나, 

손상을 줄 수 있어 보이는 껍질 사이 연한 부분을 찾으려 노력했다.


지대장이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살피는 와중에도

타이라니드(Tyranid)는 오히려 바닥에서 떠다니는 금속이 신기하다는 듯,

지대장에게서 눈을 돌리고 부유 중인 잔해들을 바라보았다.

인공 중력이 맛이 가버리는 바람에 잔해들은 아까보다 더 높이 떠올라 있었다.


타이러스(Tyrus)는 문득, 자신이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가 떠올랐다.

놈의 껍질은 지금까지 그가 싸워온 작은 놈들의 그것과 

성분상에서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만약 타이러스(Tyrus)가 놈의 목까지 도달할 수만 있다면,

그의 체인소드(Chainsword)가 놈의 목을 베어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인공 중력이 소실된 지금, 

지대장은 이 육중한 괴수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할 방법이 있었다.

방향을 잘 잡아서 볼트(Bolt) 탄을 쏜다면,

놈의 몸을 타고 오르는 대신, 그 반동으로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타이러스(Tyrus)는 일부러 자세를 무너뜨리고 쭈그려 앉는가 싶더니, 

그대로 어깨를 이용해 바닥을 굴렀다.

지대장의 움직임에 타이라니드(Tyranid)는 즉각 반응했다.


놈은 타이러스(Tyrus)를 향해 고개를 홱 꺾었다.

비웃듯이 지대장을 바라보는 놈의 눈에는 

그래서 네가 뭘 할 수 있겠냐는 업신여김이 역력했다.

절대로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확실하고 친숙한 감정이라 지대장은 일순간이지만 정신을 팔렸다.

불과 1초도 안 되는 머뭇거림이었지만, 놈에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타이라니드(Tyranid)는 발사된 탄환처럼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돌진하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타이러스(Tyrus)에게 발톱을 꽂아 넣었다.


타이러스(Tyrus)는 뒤로 도약하며, 

체인소드(Chainsword)로 공격을 막아내려 했지만, 완전히 방어하진 못했다.

단칼에 목이 날아가는 것은 피했지만,

부러진 놈의 발톱이 입 쪽에 있는 헬멧 안전망을 뚫고 들어와,

그대로 그의 턱 일부를 베어냈다.


타이러스(Tyrus)는 당황하지 않고 몸을 굴려 다시 자세를 잡았다.

망가진 헬멧 구멍에선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자가 복구를 실패한 헬멧의 정보 공유가 끊기면서 정보창이 먹통이 되자,

지대장은 헬멧을 벗어버렸다.

무중력 공간에 피와 이빨이 흩뿌려지면서 그의 가슴께에서 둥둥 떠다녔다.


신체 보호기전이 작동되면서 진통제가 그의 얼굴을 마비시켰고,

잘려 나간 턱 부분에서 벌써 반흔이 구축되고 있었다.

타이러스(Tyrus)의 몸은 어떤 상황에서건 자신을 보호하도록,

신체 대부분이 개량되어 있었다.


괴수는 그런 그를 두고 원을 그리며 빙빙 돌았다.


타이러스(Tyrus)는 벌써 상처가 아물어 가는 얼굴을 잡고

부러진 턱뼈를 거칠게 제자리로 밀어 넣었다. 

피를 너무 흘리는 바람에 시야가 아직 흐릿했지만,

두 번째 심장이 첫 번째 심장을 지원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덕분에

타이러스(Tyrus)는 아직 자신의 계획을 진행할 수 있었다.


지대장은 놈을 기만하기 위해, 

짐짓 도망가려는 척, 문으로 달려드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놈은 타이러스(Tyrus)의 탈출을 막으려는 듯이 더 빠르게 움직여 문 앞을 막아섰다.

타이러스(Tyrus)는 문으로 달려가는 대신 옆으로 빠지면서 괴수와 거리를 두고, 

방어가 허술한 놈의 오금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놈은 지대장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랐지만, 

반동으로 뒤로 날아가는 지대장에게 질세라 꼬리를 휘둘렀다.

하지만 놈은 상황을 잘못 판단했다.


놈은 타이러스(Tyrus)가 반동으로 뒤로 물러서려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놈의 생각과 달리 지대장은 뒤로 탄을 날린 뒤, 

고개를 숙여 놈의 꼬리 공격을 피하며 오히려 앞으로 뛰어들었다.


타이라니드(Tyranid)는 비명을 질렀다.


놈의 울음소리는 너무나 커서, 

괴수의 가슴팍으로 뛰어들던 타이러스(Tyrus)는

누군가 그의 머리를 잡고 관자놀이를 직접 두들겨 패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대장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대신 그는 체인소드(Chainsword)를 높게 쳐들어 놈의 허벅지 부위를 힘껏 내리쳤다.

괴수는 지대장을 잡아챌 요량으로 깡충거미가 사냥감을 감싸듯 팔을 휘둘렀다.

하지만 지대장은 예상대로라는 듯이 

놈의 넓적다리에서 체인소드(Chainsword)를 비틀어 뽑아내고는 도약했다.

무중력 상태 덕분인지, 

타이러스(Tyrus)는 팔을 내리는 바람에 무방비 상태가 된 

놈의 갈비뼈 부분에 단숨에 도달했다.


타이라니드(Tyranid)는 지대장을 떨쳐내려는 듯, 다시 울부짖었다.

그러나 타이러스(Tyrus)는 개의치 않고 체인소드(Chainsword)를 휘둘렀다.

체인소드(Chainsword)의 톱니가 놈이 순간적으로 들어 올린 팔의 손톱을 으르렁대며 잘라냈다.

손톱이 잘려 나간 놈의 팔은 검붉은색의 체액을 내뿜었다.

괴수의 체액이 쉭쉭 대며 바닥을 때리는 순간, 금속이 부글거리며 끓어올랐다.


타이러스(Tyrus)는 의식적으로 입 안에 있는 산성 침샘을 작동시키며,

타이라니드(Tyranid)의 머리 부분을 향해 다시 뛰어올랐다.

지대장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산성 침이 

놈의 입 부근을 덮고 있던 경고한 장갑 외피를 녹이자,

괴수 놈도 어쩔 줄 몰라 하며 휘청이더니 뒷걸음질로 몇 발짝 물러났다.


타이러스(Tyrus)는 놈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괴수의 어깨 위에 단단히 자리를 잡고 체인소드(Chainsword)를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천지를 가를 태세로 체인소드(Chainsword)를 휘둘러 놈의 목을 내려쳤다.

톱니가 비명을 지르면서 괴수의 목을 깊숙이 베어냈다.

그러자 타이라니드(Tyranid)의 목이 갈라지면서, 

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공기 중에 놈의 체액이 흩뿌려졌다.


타이러스(Tyrus)는 그걸 보며 새삼, 

놈들의 피도 붉은색이란걸 다시 떠올렸다.

다음 순간, 지대장은 자신이 더 이상 놈의 어깨 위에 있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괴수는 목이 베이는 순간, 

지대장을 잡아채 자신에게서 멀찍이 떨어뜨린 것이다.

지대장을 움켜쥔 놈의 손톱 중 하나는, 

그의 몸을 꼬챙이처럼 깔끔하게 관통하고 있었다.


생명공학의 경의,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타이러스(Tyrus)의 몸도 

이렇게 심각한 외상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의 몸을 꿰뚫은 놈의 손톱은 

심장 두 개를 동시에 관통하고는 양쪽 견갑골 사이로 튀어나와 있었다.


상처 사이로 엄청난 피가 솟구치는 바람에 타이러스(Tyrus)는 검붉은 망토를 두른 것처럼 보였다.

피가 빠져나오면서 힘이 빠진 지대장의 손에서 무기들이 떨어져 몇 미터 아래 바닥을 때렸다.


타이라니드(Tyranid)는 손을 풀지 않은 채, 

피를 흘리는 타이러스(Tyrus)를 그대로 두고 자세히 관찰했다.

놈의 얼굴이 어찌나 가까웠던지, 

타이러스(Tyrus)는 놈의 이빨 사이로 흐르는 침을 볼 수 있었다.

지대장은 어떻게든 반격해보려 했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타이러스(Tyrus)는 놈이 거대한 아가리를 한껏 벌리고 자신을 쥔 손을 끌어당기자 안심했다.


이제 모든 건 곧 끝날 것이다.


타이러스(Tyrus)는 놈의 아가리와 몇 센티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다다르는 순간,

아끼고 또 아껴 왔던 마지막 비장의 수를 꺼냈다.

지대장은 허리춤에 있던 수류탄들의 안전핀을 동시에 뽑았다.


네깟 놈에게 내 배는 못 줘.


타이러스(Tyrus)는 연쇄 폭발이 둘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기 직전,

의기양양하게 머릿속으로 외쳤다.




불티스(Vultis)는 폭발이 함선을 뒤흔드는 순간, 함포 갑판 중간쯤에서 걸음을 멈췄다.

더 많은 경고음이 더 시끄럽게 울리는가 싶더니, 

우르렁거리는 천둥소리가 그의 발밑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의무관은 전투의 열기가 한창 뜨거웠던 와중에도, 

함선이 이런 소리를 내며 진동하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적의 강제 승선 공격이나 함포 공격 때와는 달리, 지금은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 같았다.

의무관은 벽의 정보 단말과 연결해, 

장갑복 헬멧과 함선 데이터를 동기화시키고 함선의 현재 상태를 분석했다.


인커럽티블(Incorruptible)은 벌써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불티스(Vultis)는 눈앞에서 쉬지 않고 올라가는 문자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강제 승선에 성공한 외계인들은 소수였지만, 예전과 달리 계획적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놈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피해를 받아내라고 만든 구조물들은 전부 우회하고, 

배의 대들보라 할 수 있는 선루(船樓)를 포함, 주요 구조물만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점차 커지는 진동은 이제, 의무관의 발을 계속 흔들고 있었다.

함선은 구조적으로 붕괴하는 중이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불티스(Vultis)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듯이 허리춤에 있는 샘플을 향해 말을 걸었다.


"이대로면 함선의 모든 게 무너질 거야.

이상한 건 저들이 공격한 부분에 끌릴만한 먹이가 전혀 없었단 말이지."


불티스(Vultis)는 격리 샘플 채집통을 들어 올려 그 안을 바라보았다.

그가 보기에 이놈은 더 큰 생명체에 붙어 살아가는 녀석이었다.

그렇다면 일종의 기생충이라 할 수 있었다.

의무관은 좀 전에 자신이 샘플을 이리저리 쑤셨을 때,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타이라니드(Tyranid) 시체들의 반응을 다시 떠올렸다.


"넌 대체 뭘까?"


그때 다시 커다란 진동이 함선을 뒤흔들었다.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인커럽티블(Incorruptible)이 완전히 붕괴할 때까지 몇 분도 남지 않았다.

이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손실이었다.


고대로부터 전해진,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귀중한 함선뿐만 아니라,

거기에 탑승한 울트라마린(Ultramarine)들마저 모두 잃어버리다니.


만약 한 시간 전에, 누군가 불티스(Vultis)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말했다면, 

의무관은 그딴 건 어처구니없는 잠꼬대라고 응수했을 것이다.

의무관은 반드시 이 기생충을 가지고, 퇴함해야만 했다.

이건 그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개체였다.

꼭 적합한 연구실까지 데려가 그 생태를 명확하게 밝혀야만 한다.

이 녀석은 어째서 이 타이라니드(Tyranid) 개체들이 

이토록 이질적인 움직임을 보이는지를 알아내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터였다.


"타이러스(Tyrus) 지대장님."


불티스(Vultis)는 하울링이 계속되는 무전기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의무관 불티스(Vultis) 입니다.

전 승선용 갑판 하이페리아(Hyperia)로 갑니다.

거기 남아있는 우주선을 이용해 레기움(Regium)으로 향할 예정입니다.

우리가 항로만 제대로 잡아주면 충분히 레기움(Regium)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 통신이 들리신다면 하이페리아(Hyperia)에서 합류합시다.

인커럽티블(Incorruptible)은 파선(破船)되었습니다.

반복합니다, 인커럽티블(Incorruptible)은 파선되었습니다."


불티스(Vultis)는 헬멧 화면에 함선의 지도를 띄우고, 

현재 위치에서 가장 빠르게 하이페리아(Hyperia)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을 확인했다.

여기서라면 몇 분 내로 하이페리아(Hyperia)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의무관은 최단 거리로 이동하기 위해 함포 갑판을 횡단하기로 했다.

출구에 거의 다다를 무렵, 그의 귀에 라즈건(Lasgun)과 자동 소총이 뒤섞인 총성이 들렸다.


불티스(Vultis)는 문을 열기 전에 권총을 뽑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의무관은 만반의 준비를 했다 생각했지만 문 안의 광경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통로 안에는 타이라니드(Tyranid)가 한 마리도 없었다.

그저 다양한 계급의 선원들과 무장 경비병인 보이즈맨(Voidsman)들이 뒤섞여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편을 갈라, 상대를 죽일 기세로 사납게 싸우는 중이었다.

바닥에는 사람 시체가 즐비했고, 비이성적인 싸움은 점차 광기로 치달았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그들은 모두 정신이 나간 사람들처럼 보였다.

불티스(Vultis)가 멍하니 바라보는 와중에도

난폭함이 극에 달한 이들 중 일부는 손에 든 무기를 내던지더니, 

짐승처럼 상대에게 뛰어들어 손톱으로 할퀴고 물어뜯었다.

그야말로 야생동물이 따로 없었다.


"멈추시오!"


불티스(Vultis)의 목소리가 헬멧에 내장된 목소리 증폭 장치를 거치면서, 

커다란 외침으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드잡이질을 계속했다.

선원들은 마치 불티스(Vultis)의 목소리 따윈 아예 들리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불티스(Vultis)가 상황을 정리하는 걸 포기하고 한 발짝 내딛는 순간,

이들의 정신적 퇴행은 더욱 심해졌고, 

마치 야생동물인 양 으르렁거리면서 야만적으로 몸싸움을 벌였다.

그들 중 몇몇은 불티스(Vultis)가 다가가자 움직임을 멈추고, 

공포에 질린 눈으로 벌벌 떨며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불티스(Vultis)는 얼마 지나지 않아, 

두려움에 떠는 그들의 눈이 뚫어져라 보고 있는 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려있는 작은 생명체라는 걸 알아차렸다.


불티스(Vultis)는 다시 이들에게 이성적으로 행동하라고 외쳤지만, 

곧, 자신의 힘으로 이들을 되돌릴 순 없으며, 

이렇게 시간을 버리는 와중에도 함선의 종말이 쉬지 않고 다가오고 있다는 

암울한 현실만 뼈저리게 느꼈다.

결국 불티스(Vultis)는 이들이 서로 싸우도록 내버려 둔 채, 

묵묵히 승선용 갑판으로 달려갔다.


승선용 갑판에는 수많은 타이라니드(Tyranid)가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확인하자 모든 타이라니드(Tyranid)가 죽어 있었다.

처음에는 모두 볼트(Bolt) 탄에 당한 것 같았지만,

불티스(Vultis)가 연료가 충분해 보이는 소해정으로 다가갈수록,

타이라니드(Tyranid)의 시체는 잔인하게 찢어발겨 있었다.

뭔가에 얻어터지고 팔다리가 뽑힌 처참한 놈들의 시체를 보자,

불티스(Vultis)는 조금 전의 통로에서 본 선원들의 싸움이 생각났다.

여기서도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이 타이라니드(Tyranid)들도 아까 그 선원들과 동일한 광기의 희생양이 된 것일까?


조심스럽게 시체들을 넘어가던 불티스(Vultis)의 눈에 이 소동의 원인이 들어왔다.

산처럼 쌓여있는 외계인들 시체 무더기 꼭대기에 푸른색 장갑복이 튀어나와 있었다.


함선이 다시 요동쳤다.

이번에는 한 번의 큰 흔들림으로 끝나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함선이 구조적으로 뒤틀리기 시작하면서, 

부서진 강철 조각이 천장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바람에 

강철비에 얻어맞은 불티스(Vultis)는 바닥에 무릎을 꿇는 수밖에 없었다.

의무관의 헬멧은 경고음을 내보내며, 해당 구역에서 이상 감압 현상이 보인다고 경고했다.

이제 시간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불티스(Vultis)는 발을 헛디뎌 가며, 잔해들 사이로 기다시피 움직였다.

그는 소해정으로 직행하는 대신,

시간 내에 유전자(遺傳籽; Gene-seed)를 안정적으로 채취할 수 있을지를 걱정하며

바닥에 누운 울트라마린(Ultramarine) 옆으로 향했다.

불티스(Vultis)가 울트라마린(Ultramarine)을 뒤덮은 외계인 시체 더미를 옆으로 치우자, 

형제의 어깨 장갑 위에 수기로 그린 듯한 독특한 기록이 새겨져 있었다.

그걸 알아본 불티스(Vultis)는 비통한 심정으로 고인을 애도했다.


"바으라카(Baraca),"


생기 없는 전사의 손을 붙들고 목 놓아 울던 불티스(Vultis)는 

누워있던 시체가 갑자기 자기 손을 꽉 조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불티스(Vultis)는 울음을 거두고 미소를 지었다.


"또 사신을 속였구려, 형제여.

어깨 장갑에 기록을 하나 더 덧붙여야겠소."


불티스(Vultis)는 타이라니드(Tyranid)의 시체더미에서 바으라카(Baraca)를 끌어냈다.

의무관은 기도문을 읊조리며 가장 가까운 소해정으로 형제를 질질 끌고 가면서, 

공허한 우주공간으로 잔해를 쏟아내며 분해되고 있는 인커럽티블(Incorruptible)이 

제발, 자신과 형제가 탈출할 때까지만 버티어 주기를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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