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흐서킨(Kasrkin) 1부 2장

 

캐흐서킨(Kasrkin) 1부 1장 에서





오베이세케라(Obeysekera) 대위는 

발키리(Valkyrie)가 착륙하면서 만들어낸 모래 구덩이 가장자리에

대원들을 일렬로 도열시켰다.


다쉬트 아이-케바아(Dasht i-Kevar)의 태양이 그 정점을 지나자,

사물들의 그림자가 다시 돌아왔고,

세상은 다시금 깊이를 가진 환경으로 돌아왔다.


대위는 손바닥으로 만든 그늘을 통해 동쪽을 자세히 살피고는

고개를 돌려 그곳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 바로 저기에 있다.


주의깊게 들어보면,

터보팬 엔진이 돌아가며 주기적 울려 퍼지는 기계음이 저 멀리서 들렸다.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줄지어 선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그들도 찐('kin)이었기에,

대원들 역시, 대위가 들은 소리를 들었다.

게다가 이들이 쓴 방탄모에 내장된 탐지기(Auspex)들도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움직임이 추적된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케이디아(Cadia) 정예병에게 지급되는 표준 화기인, 

고준위 라즈건(Hot shot lasgun), 일명 헬건(Hellgun)을 장비한 이들은

의심이 가는 방향으로 저마다의 방법으로 총기를 겨눴다.

일견 통일되지 않은 무뢰배들이 가볍게 건들거리는 모습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전원 즉시 조준 사격이 가능한 상태였다.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헬건(Hellgun)으로

2 마일(약 3.2 ㎞) 밖에서 오크(Ork) 머리를 날려버리는 걸 본 적이 있었다.


터보팬 엔진의 소음이 더욱 커져가자,

대원들은 대위나 맬릭(Malick) 병장의 명령이 없었음에도

작은 움직임만 보이면 즉각 사격을 할 수 있도록 

의심되는 방향을 향해 헬건(Hellgun)을 보다 정밀하게 겨누며 더욱 경계했다.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합류한 정치장교를 바라보았다.

로우샹트(Roshant)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원들을 살피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강렬한 태양빛 때문에, 

정위의 피부에선 땀이 송골송골 돋아나고 있었지만,

사막 기후의 건조한 대기 때문에 

땀은 피부 위로 나타나자마자 피부에 소금 자국만 남기고는 증발해버렸다. 

시선을 느낀 로우샹트(Roshant)가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를 바라보며 물었다.


"뭘 기다리는 건가?"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정위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포유류로서의 본능이 신체를 어떻게든 냉각해 보려고 피를 표피로 보내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이곳의 대기는 피보다 훨씬 뜨거운 상태였기에, 

그런 생리현상으론 체온을 낮추기 힘들었다.


"귀관에게도 곧 보일겁니다, 정위님."


대답을 마친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동쪽을 바라보았다.

달궈진 모래가 갑작스레 불어닥친 돌풍으로 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날뛰는 모래들 위로, 

지면에 거의 닿을 듯이 저공비행하는 비행체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기체 표면에 스프레이로 M 자 마크를 그려둔, 

세 대의 발키리(Valkyrie)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정면으로 날아오는 발키리(Valkyrie)의 모습은 이들에게 익숙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발키리(Valkyrie) 수송선과는 달리, 

이들의 동체 중심부에는 승객 탑승 구획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전반적으로 기체 외형이 조금 왜소해 보였다.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다시 대원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이 뭘 보고있는지를 벌써 알아챈 대원들 중, 

몇몇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 차올랐다.


스카이 탤런(Sky Talon)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공비행 때문에 날아오른 모래구름이 그들의 외형을 더욱 강조했다.


목적지에 다다른 이들의 터보팬 엔진 소리는 늦어졌지만, 

제자리에서 멈추고, 

착륙하려는 듯이 정지비행에 들어가자, 

낮게 울려퍼지는 기계음과 소음의 강도는 더욱 커져, 계속 들으면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허나 이들은 착륙하지 않았다.


스카이 탤런(Sky Talon)들이 속도를 줄이며 서서히 다가오자,

터보팬 엔진들이 뿜어내는 하강 기류에 모래들이 제멋대로 솟구치며,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들은 싣고 온 화물을 떨구자마자, 

태양을 향해 고도를 높이며 기수를 반대로 돌려, 날아왔던 방향으로 사라져 갔다.

그 모습은 마치, 기수를 내던지고 자유롭게 도망치는 말들처럼 보였다.

격정적인 모래바람이 전선에서 이탈하는 그들을 놓칠세라 바짝 따라붙었다.


오베이세케라(Obeysekera) 대위는 대령의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자,

아으루나(Aruna) 대령이 눈살을 찌푸리고 서있었다.


"제 생각이 아닙니다,"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억울하다는 듯이 양손을 펼치며 변명했다.


"이게 저희에게 기동성을 제공해줄 겁니다."


"그렇긴 하지."


아으루나(Aruna) 대령은 대위의 변명에 맞장구를 쳐 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스카이 탤런(Sky Talon) 세 대는 벌써 작은 점으로 변해 있었다.


맬릭(Malick) 병장은 

발키리(Valkyrie)의 자매가 뒤에 남겨놓고 떠난 차량을 가리키며 대위에게 물었다.


"이것들이 저희 차량입니까, 대위님?


"그렇네, 병장,

이것들이 우리가 사용할 차량들이지."


맬릭(Malick) 병장은 대위의 말에 입이 찢어질 듯이 큰 미소를 지었다.


"타우으로스 베네이터(Tauros Venator)가 세 대라니."


오베이세케라(Obeysekera)가 가장 왼쪽에 있는 차량에 손짓하며 선언했다.


"이연장 복합 레이저(Twin-linked multi-laser) 포탑.

내 지휘 차량은 저거다.

호출 부호는 홀리 파이어(Holy Fire)."


대위는 다음으로 오른쪽에 있는 차량을 가리켰다.


"이연장 라즈캐논(Twin-linked Lascannon).

호출 부호는 디바인 라이트(Divine Light),

이건 병장, 자네걸세.

두 대 모두 운전사와 길잡이, 그리고 사수가 탈 수 있게 개조된 놈들이지."


대위는 마지막으로 한가운데 위치한 차량을 언급했다.


"병력수송용으로 개조된 차량이다.

운전사와 길잡이 그리고 뒷쪽 탑승구역엔 최대 8 명까지 탈 수 있지.

호출 부호는 세인트 콘래드(Saint Conrad)."


병장의 만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파타날(Patanal)에서 

엘뤼시아(Elysia) 155 사단 녀석들이 이걸 굴리는 걸 본 이후로

저도 한 번 몰아보고 싶었습니다.

지상에서 굴러다니는 제국 차량들 중에 이놈들보다 빠른 건 본적이 없었습니다."


"가볍고, 빠르고, 조용하지,"


오베이세케라(Obeysekera)가 덧붙였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장비다.

대원 셋을 보내 차량을 이리 가져오도록 하게,

빠르게 짐을 싣고 출발한다."


"건저(Gunsur), 앙소르(Ensor), 프라터(Prater) 차량을 인수해서…."


맬릭(Malick)은 여기까지 말하고 말을 멈췄다.


"각자 발키리(Valkyrie) 한 대씩 맡으라고 하게, 병장."


오베이세케라(Obeysekera) 대위가 병장의 명령을 마무리했다.


"대위님 말씀 들었지."


병장이 낄낄대며 셋을 다그쳤다.


"이제 다시는, 내가 네놈들에게 제일 나쁜 일만 떠넘긴다고 불평하지 마."


건저(Gunsur), 앙소르(Ensor), 그리고 프라터(Prater)는

열기에 바짝 익어버린 다른 대원들의 질투어린 시선을 당당하게 웃어넘기면서

각자 가까운 베네이터(Venator)로 뛰어갔다.

그러는 사이 맬릭(Malick)은 오베이세케라(Obeysekera)의 수신호에 따라

남은 대원들을 이끌고 발키리(Valkyrie)에 적재된 보급품을 옮겨 싣기 위해 기체 밖으로 꺼냈다.


병사들이 여분의 탄창과 연료, 각종 보급품같은 무거운 장비와 물통들을 꺼내는 동안,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타우으로스 베네이터(Tauros Venator)가 더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했다.


차량에 오른 건저(Gunsur), 앙소르(Ensor), 그리고 프라터(Prater)는 

운전석에 앉아 벨트로 좌석에 몸을 고정한 뒤,

전원부(Galvanic motor)를 켜고 시동을 걸기 전에 

차량의 계령(械靈; Machine spirit)에게 짧은 기도를 올렸다.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세 대 모두에게서 

제국 차량들의 차체에 프로메슘(Promethium)이 정상적으로 순환하기 시작할 때 나는 

기분 좋은 울음 소리가 들리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동이 걸린 베네이터(Venator)는 콧노래하듯 웅웅거렸는데,

무한궤도 형식의 제국 차량들에게서 나는 그록스(Grox) 떼가 쿵쾅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적을 물어뜯을 준비를 마치고 대기중인 체인소드(Chainsword)에서 나는 윙윙 소리 같았다.


여섯 개의 바퀴를 지닌 베네이터(Venator)는 모래에 빠지는 대신,

얕은 고랑만을 남긴 채, 보급품이 집적된 곳으로 각자 무사히 이동했다.

대원들은 차량이 도착하자마자 보급품을 싣고, 화기를 안전하게 적재하며, 

물통을 저장소에 넣고 단단히 묶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이 차량들은 천장이 없군."


로우샹트(Roshant)가 불평했다.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차량을 점검하는 중이었다.

믿고 맞기기는 했지만, 

보급품과 물, 그리고 화기가 차량마다 적절하게 분배되고 안전하게 적재되었는지를 살피고,

차량의 두터운 플라스틱강(鋼)[Plasteel]을 통해, 

계령(Machine spirit)이 완벽한 상태인지를 느끼는 와중이라,

대위는 정위가 그에게 다가왔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대위는 마음 속으로 스스로의 미욱함을 책망했다.

이렇게 중요한 임무를 지휘, 통제한다면서,

한눈을 팔다가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하다니,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네 없습니다."


오베이세케라(Obeysekera)가 맞장구를 쳤다.

발키리(Valkyrie)의 그늘 속으로 피신했음에도 정치장교는 온몸으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다쉬트 아이-케바아(Dasht i-Kevar)의 대기는 너무나 건조해서 

땀방울은 정위의 피부에 맺히자마자 증발해 버렸다. 

로우샹트(Roshant)는 정치장교 특유의 군모를 벗으며 말을 이었다.


"저 밖 열사의 땅에서는 최대한 많은 그늘받이를 확보해야만 하는데."


"동의합니다."


오베이세케라(Obeysekera)가 정위의 말에 동의하며, 맬릭(Malick)을 가리켰다.

병장은 베네이터(Venator)의 운전석과 길잡이 자리에 황갈색 위장 그물막을 씌우는 중이었다. 


"그래서 출발하기 전에 저 작업을 하는 겁니다.

저 그물막이 우리에게 그늘을 제공해 주고, 공기도 순환해 줄겁니다."


로우샹트(Roshant)는 코웃음을 치며 빈정댔다.


"어딜가도 열풍만 불어오는 이런 뜨거운 폭염 속에서,

공기 순환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그 효용이 지극히 의심스럽소만."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멈춰있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오베이세케라(Obeysekera)가 빙글거리며 정위를 구슬렸다.


"오븐 속에서 뜨거운 공기에 바삭바삭하게 튀겨지는 느낌이겠지만 말입니다."


로우샹트(Roshant)는 차량 밖에 매달린 물 보급용 대용량 드럼통을 가리키며 불평을 이어갔다.


"중요한 추가 수분 보급품이 전부 차량 밖에 매달려있잖소.

만약 이걸 눈치챈 적들의 손이라도 탄다면, 그땐…"


"갈증으로 죽게 되겠죠,"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단칼에 정위의 넋두리를 끊어버렸다.

그러면서 대위는 로우샹트(Roshant)가 차고있는 수통을 가리키며 어르듯이 말했다.


"정위님은 개인 수통을 상비하셨죠,

여기있는 저희 모두가 자신의 개인 수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을 대비해서 전원에게 물을 배급해 가까이 두도록 하고 있죠.

물론, 저 밖에서 물이 중요한 건 맞습니다만, 

그렇다고 차량 내부에 저 드럼통을 전부 싣게 되면,

병력과 다른 장비들을 수송할 공간이 현저히 줄어들 겁니다. 

게다가 물이 가득 찬 드럼통은 매우 효과적인 추가 장갑 노릇을 합니다.

예기치 못한 매복에서 우리를 방호해줄 겁니다."


"그리고 사흘 뒤에 바짝 말라 죽게 되겠지."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고개를 흔들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사흘은 아닙니다.

여기선 절대 그렇게 못해요.

통상적으로 병사는 개인 수통만으로 하루를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물이 떨어지면, 

우리 중 누구도 여기서 24 시간 이상을 추가로 버틸 순 없을 겁니다."


로우샹트(Roshant)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위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는 엉덩이께에 걸쳐둔 큰 물주머니를 꺼내 벌컥벌컥 마셔댔다.


"탈수 증세를 겪다가 고사(枯死)하는 걸 상상만 해도 갈증이 나는구만,"


"외람되지만, 지금 착용하고 계신 그 두꺼운 외투와 정모는 

출발하기 전에 여기 벗어 두고 가시는 편이 훨씬 더 나으실 겁니다."

 

로우샹트(Roshant)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으로 

진심으로 충고하는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를 언짢게 쏘아 보았다.


"정치장교가 고작 날씨 따위 앞에서 자신의 몸 하나도 마음대로 가누지 못한다면,

전장에서 적과 마주하는 병사들을 어떻게 통솔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찐('kin)들은 상관이 보여주는 행동에 감명을 받고 존경을 표하지, 

어떤 옷을 입었는가 따위에는 일절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나는 정치장교네.

난 병사들의 존경따위는 바라지 않아,

난 그들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요구할 뿐이야."


"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졌다는 표정을 지으며,

로우샹트(Roshant)가 수통으로 쓰는 물주머니를 가리키고 말했다.


"그보다 출발하기 전에 거기 있는 물을 다 드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출발 직전에 전원을 다시 모아놓고 물 분배를 할 예정이거든요."


"아아, 기꺼이, 기꺼이 그러지."


로우샹트(Roshant)는 다시 한번 물을 양껏 들이키고는 

바로 마셔버린 물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듯이, 

차량 옆에 매달린 드럼통 뚜껑을 열려고 다가갔다. 


"지금 수통을 채우시려면 발키리(Valkyrie)안에 있는 물을 이용하십시오."


오베이세케라(Obeysekera)가 예의바르지만 엄히 말했다.

로우샹트(Roshant)는 대위의 말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이

입가에 조소를 머금고는, 당당한 태도로 드럼통 뚜껑을 잡고 돌리려했다.


정위가 드럼통의 뚜껑을 열려는 찰나,

맬릭(Malick)이 번개처럼 달려와 정치장교의 손을 쳐냈다.

예상치 못한 병장의 손찌검에 놀랐는지, 로우샹트(Roshant)는 뒷걸음질을 쳤다.

정치장교는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즉시 다른 쪽 손으로 견갑부 권총집에서 볼트 권총(Bolt pistol)을 꺼내, 

총구를 맬릭(Malick) 병장의 이마에 겨눴다.


"상대가 정치장교라는 걸 차치하더라도, 

병사주제에 장교를 구타하는 건 사형에 준하는 중범죄다."


로우샹트(Roshant)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널 즉결처분하지 않아야 될 이유를 변호해 보도록."


"왜냐하면 맬릭(Malick) 병장은 내 명령를 정확하게 따랐기 때문입니다."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캐흐서킨(Kasrkin) 병사 앞으로 

슬쩍 자리를 옮겨 정치장교의 총구를 몸으로 막아서며 말을 이었다.


"병장은 제게 명확한 동의를 받지 않은 자는, 

그 누구라도 이 드럼통에 들어있는 물에 손대지 못하게 하라는 엄명을 받았습니다."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한손을 뻗어 물이 들어있는 드럼통 위에 손을 올리고는

사랑스러운 애완동물을 쓰다듬는 것처럼 어루만지며 말했다.


"다쉬트 아이-케바아(Dasht i-Kevar), 특히 대사해(Great Sand Sea)에서 물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로우샹트(Roshant) 정위는 병장의 이마를 겨눴던 볼트 권총(Bolt pistol) 총구를 슬쩍 위로 들러올렸다.

이제 총부리는 오베이세케라(Obeysekera)의 양미간 살짝 위쪽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던 정위는 아무런 경고도 없이, 

갑자기 방아쇠를 당겼다.


볼트탄이 오베이세케라(Obeysekera) 대위의 머리 위로 사라졌다.

다른 캐흐서킨(Kasrkin)과 동일하게 케이디아(Cadia) 식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병들보다 약간 길게 유지한 대위의 머리카락을 살짝 스치고 지나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맬릭(Malick) 병장은 반사적으로 헬건(Hellgun)을 들어올려,

정치장교의 심장을 겨눈 상태로 즉시 조종간 안전을 풀고 견착했다.


"어디 한 번 다시 해보…"


병장이 으르렁대며 위협했지만,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수신호로 병장을 제지했다.


"그럴 필요 없네, 병장."


대위는 부드러운 미소를 유지하며, 

맬릭(Malick)의 헬건(Hellgun) 총열을 잡고 총구가 지면을 향하게 내렸다.


"난 정치장교님께 이 상황을 변호할 충분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니까."


로우샹트(Roshant) 정위는 섬찟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아버지, 

그러니까 군 총관(Lord militant)께서는

내가 황제 폐하께 충성을 바치기로 다짐했을 때,

내게 한 가지 맹세를 하도록 하명하셨소.

반드시 쏘겠다는 생각이 없으면 절대 무기를 꺼내들지 말라는 맹세였지.

그래서 난 황제 폐하께 서약한대로 꺼내든 무기를 쏜 것 뿐이요.

폐하를 섬기는 자로서 충성의 맹약을 지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소임이지."


정치장교는 권총을 다시 권총집에 넣기 전에 상아로 장식된 손잡이를 자랑하며, 

오베이세케라(Obeysekera) 대위 보란 듯이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꺼덕대는 정위의 호들갑을 묵묵히 보고, 물었다. 


"앰프헌트(Amphant) 상아인가요?"


로우샹트(Roshant)는 신이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소,"


"굉장한 물건이군요."


"명품이지."


정치장교는 흥이 식었다는 듯, 베네이터(Venator) 앞쪽을 바라보며 내뱉었다.


"출발 준비가 되면 내게 알리시오.

출발하기 전에 내 미리 언급할 게 있으니까."


로우샹트(Roshant)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냉큼 몸을 돌려, 

상대적으로 시원한 발키리(Valkyrie) 안쪽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정위가 가청거리를 벗어나자마자, 

맬릭(Malick) 병장은 오베이세케라(Obeysekera)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을 걸었다.


"앰프헌트(Amphant) 상아란 말씀입니까?

정말이십니까?"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눈엔 그래 보이더군,

그윽한 품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고색창연한 기품을 띄고 있더군,

금빛 광택 말일세."


맬릭(Malick)은 대위의 말씀에 자신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저희들 전체보다 더 가치있는 장식을 단 무기를 든 사람과 

목숨을 건 임무에 나가보기는 또 처음입니다."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작금의 제국군에선 드문일도 아니지."


맬릭(Malick)은 대위의 말에 정말 그렇다며 투덜거렸다. 


"중요한 건 이걸세.

저 권총 손잡이 분량 만으로도 

성인 한 명이 비네라(Venera)에서 10 년은 유유자적하며 놀고 먹을 수 있다는 거야."

※ 비네라(Venera)  : 정확히는 비네라 6(Venera Ⅵ), 성계내 유명한 <진짜!> 휴양 행성.


오베이세케라(Obeysekera) 대위는 병장에게 몸을 돌리고 엄히 말했다.


"다른 대원들에게 정위의 권총 손잡이 재질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 게 좋겠군."


"저런 식으로 손놀림이 가벼우신 분이라면,

제 입을 틀어막더라도 조만간 다들 알게 될텐데 말입니다."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맬릭(Malick)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덧붙였다.


"또한 난 귀환할 때까지 정치장교가 살아있기를 바란다, 이해하겠나?"


맬릭(Malick)은 마지못해 그런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전장에서는 가끔 예측 못할 일이 벌어지잖습니까,

뭔가 조용히 사라진다던가 말입니다."


"맬릭(Malick)…"


병장은 소리 없이 싱긋 웃었다.


"그냥 농담입니다, 각하."


"그건 그렇다 치고, 

여기서 가장 값진 것이 저 볼트 권총(Bolt pistol)이라 생각했다면, 그건 틀린 생각이네.

다쉬트 아이-케바아(Dasht i-Kevar)는 금전으로 함부로 견적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성계(星界; System)에서 가장 귀중한 행성이야."


맬릭(Malick)은 양팔을 크게 벌려, 

그의 손 안에 다 담아지지도 않는 이 세상을 그 팔 안에 전부 담겠다는 듯이 

허공을 감싸 안는 몸짓을 보였다.


"황제 폐하의 영토라는 이곳의 상징적 의의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도 이 대사해의 모래 아래에 무언가 상당히 귀중한 것이 숨겨져 있다는 풍문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직접 마주하게 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하던데 말입니다."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네.

여기 모래 아래에서 아쿠아 비태(Aqua Vitae)가 산출되지."


"생명의 물 말씀이십니까?

제겐 그렇게 들리는데 말입니다."


"그래 이 구역(Sector)에서 산출되는 특산물이자,

가장 효과적인 회춘용 각로(却老) 제제야.

완제품 한 병의 가격이 상서성(尙書省; Adeptus Custodes) 갑옷 한 벌보다도 비싸다더군.

사용 즉시 바로 갱소년(更少年)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시술이나 치료들과는 달리 부작용도 거의 없다고 하던데."


맬릭(Malick) 다시 한 번 양팔을 크게 벌려 허공을 감싸 안았다.


"근데 그 물은 어디에 있답니까?

생명은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모른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난들 알겠나.

제국민들은 아무도 그 원천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구하는지를 몰라.

그래서 제국과 그걸 거래하는 사막 원주민들…

아니 퍼랭이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제국과 주로 거래를 '했던' 사막 원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우리가 여기 온거야." 

※ 퍼랭이 : 트'아우(T'au)


대위는 병장을 바라보며 신랄한 표정으로 웃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모래투성이인 이 행성을 지키기 위해 기를 쓰는 이유라네.

우리 장군들과 행성 총독들의 외모가 실제 나이인 230 ~ 240 대처럼 보이는 대신,

30~40 대로 보이도록 하려고 우리의 목숨을 건다는 거지." 


대위는 줄곳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희극적인 말투와는 달리, 그의 표정엔 웃음기가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우린 높은 분들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죽는다는 말씀."


맬릭(Malick) 병장은 대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황금 옥좌(Throne)시여. 지금 그게 정말이십니까?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저희가 목숨을 건단 말씀이십니까?"


병장의 놀란 말투에 자기 성찰에서 깨어난 오베이세케라(Obeysekera)는

즉각 자조적인 태도에서 벗어났다.


"아니, 그런 사정 때문에 우리가 이 모래밭에서 뒹구는 건 아닐세, 병장.


우리가 이런 임무를 수행하게 된 이유는, 

대부분의 임무가 그러했듯이 

그 근거가 아무리 멍청하고 의미없어 보인다 하더라도,

성간 우주군인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이네,


우리가 이번 임무를 수행하게 된 이유는,

우리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임무를 늘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캐흐서킨(Kasrkin)이기 때문이네."


베네이터(Venator)를 가리키는 대위의 얼굴엔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가 이번 임무를 수행하게 된 이유는,

절대 그래선 안된다고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런 최신장비를 우리 마음껏 굴릴 수 있기 때문이네.

그럼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됐나?"


맬릭(Malick)의 얼굴에도 대위의 표정과 비슷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 물론 준비가 되었습니다,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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