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혈통 (Bloodlines) 1

 



제 1장


아래, 

더 아래,

교통시설이 더 이상 날아다니지 않는 곳 아래,

높다란 고가 도로들 아래,

차량들이 통과하는 환승 통로 지지대들 아래,

흐릿한 조명이 위태롭게 매달려 깜박이는 어둑한 그곳 아래,

두터운 방범 유리창 표면 위로 응결된 수증기가 덮힌 그곳 아래…


그곳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몇몇은 토파즈(Topaz)가 주는 고양감에 휩싸여 있었고,

몇몇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사람들 모두가 극도의 도취감과 희열에 취해 있었다.


그녀는 그걸 들이마셨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이 

거친 경석콘크리트(Rockcrete)로 벽에 긁혀 상처를 입도록 놔두었다.

그건, 축축한 밤의 심장 위를 어루만질 때 느껴지는 차가운 느낌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 어둠 속으로 스며들며 빛나고 있는 

회원제 클럽의 현관문이 들어왔다.

그곳은 네온 빛으로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차량 엔진들이 내뿜는 

으르렁대는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축축한 아스팔트 위를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들의 

거친 비명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들이마셨다.


토파즈(Topaz).

그건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그녀는 아찔한 고양감 속에서 극한의 자유를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쳐다보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친구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며 친근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싸구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품들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의 얼굴이 

광화학반응을 하는 색소들처럼 

선홍색이었다가, 하얀색으로, 다시 검은색으로 색이 계속 변하면서 타올랐다.


치안소(Sanctioned) 짭새굴(Haze Den)의 열린 문틈 사이로 

음악이 흘러나와 그녀를 그 안으로 끌고 들어갈 것처럼 위협했다.

<역자 주: 치안소 짭새굴은 치안청(Ministorum Sanctioned)이 

치안 유지와 일선 업무 처리를 위해 관할 소재지 요소에 설치한 

치안행정 기관을 지칭하는 은어입니다.>

그녀는 음악의 열기와 소음에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토파즈(Topaz)를 들이마시기만 한다면, 

영원히 거리를 걸을 수 있을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냄새들을 좋아했다.

구혼자들이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서로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냄새들도 서로를 덮어버리려고 싸워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녀는 외투 호주머니에 두 손을 묻어버리고,

어깨를 한껏 뒤로 밀고는 인파 사이로 미끄러져 나갔다.

그녀는 지금이 몇 시인지도 정확히 몰랐다.

아마도 한밤중일 것이다.

동이 트려면 기껏해야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결정을 내린다는 것,

그게 바로 자유의 핵심이다.

멍청한 결정이건, 좋은 결정이건, 

지금 바로 밖으로 나가 자신이 결정한 일을 하라지.

 

술에 취한 한 남자가 씩 웃으면서, 갑자기 그녀의 앞길을 막아섰다. 

그가 무례하게 얼굴을 들이미는 바람에 

그녀는 본의 아니게 그의 입에서 나는 입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안뇽, 이뿐 물고귀."


한껏 취한 그의 말은 

비틀거리는 그 몸짓만큼이나, 알아듣기 힘들었다.


"나랑가취 수용하러 가쥐아눌뢔?"


그의 플라스텍 머리카락(Plastek hair)은 너무 깨끗해 보여서

인공적으로 삽입되었다는 티가 팍팍 났다.

<역자 주: 플라스텍(Plastek)은 건축 자재 등에 쓰이는 인공물로 

신체 유기물 대체제로도 사용됩니다.>


그녀는 미끄러지듯 그를 피해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인파가 주정뱅이를 멀리 치워버렸고, 

그녀는 다시금 지나치는 수많은 얼굴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불꽃놀이가 막 끝난 밤하늘은 눈부심과 화학물질 냄새가 가득했다.

그녀의 머리 위에 높다랗게 서 있는 아치형 기둥에는 

해골 무늬가 무수히 박혀있었고, 

그 끝자락에는 백합 문장(Fleur-de-lys) 도상이 장식되어 있었다.

그곳에 숨겨진 상업용 감시 카메라는 렌즈를 번득이며 주변을 촬영하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상황을 디지털 화상으로 하나씩 변환하여 저장하고 있었다. 


한 여성이 웃고 있고,

한 남자가 제단처럼 보이는 곳에서 그녀를 보고 있다.

이제 곧 다른 세상의 붉은 하늘 밑에서 

용감하게 진군할 병사들을 실은 해군 수송선이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녀가 갑작스런 위협을 감지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함께 동행하던 친구들 사이에서 떨어져 나와 한참을 걸어갔다.

그녀는 자신이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처럼 보였고,

그녀 자신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뒤를 쳐다봤고, 

플라스텍 머리카락(Plastek hair)을 한 남자가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고, 그들은 그녀를 뒤쫓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녀는 속도를 높였다.

그 바람에 뾰족구두가 길바닥에 제멋대로 나뒹굴었다.

큰 길로 나서기 위해 그녀는 온힘을 다해 거리를 내달렸다.

그 와중에 길 옆에 이중 철책선에 살짝 긁혔지만,

아래쪽을 향해 제법 가파르게 치달은 반짝이는 자갈길로 나올 수 있었다.


그녀가 토파즈(Topaz)에 취해있지 않았다면, 

아마 여기서 멈췄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큰길은 

암묵적인 안전을 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더 아래로 내달려갔다.

아래로 내려갈 수록 주변은 점차 어둠이 짙게 깔리면서 한산해졌고,

길가의 조명들도 붉은 색으로 바뀌며 희미해져갔다.

그리고 오래된 한밤의 자갈길은 내려갈수록 점점 더 미끄러워졌다.  

쿵쿵대는 음악의 울림이 더욱 강렬해지면서,

마치 공동체 방송 스피커에서 저녁때마다 울려 퍼지는 

군용 장송곡(葬送曲)처럼 느껴졌다.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그녀는 피로감을 느꼈다.

그녀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놈들은 아직도 그녀를 쫒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넷이었고, 

넷 모두, 제네자(Jeneza)나 레지(Rezi), 

그것도 아니라면 스라토브(Slatov)에 완전히 취해있었다.

그들은 모두 플라스텍 머리카락(Plastek hair)을 하고 있었고,

말쑥하게 차려입고, 깨끗하고 목이 긴 신발을 신고 있었다.  

보안 회사 직원이거나, 어쩌면… 장교일지도 몰랐다.

연줄이 없는 하층민들은 감히 범접할 수도 없고,

제멋대로 굴어도 아무도 손댈 수 없는 특권층일 것이다.


그녀는 이전에도 이런 놈팽이들을 수도 없이 봐왔다.

더 이상 이곳에서 저런 건달놈들을 만나지 않길 바랬지만,

저 한량패들은 짬이나면 여기까지 내려와서

여성들을 괴롭히고 치마를 들추는 패악질을 일삼았다.

상대 여성이 자신들과 자신들의 권력을 상대로 

감히 얼마나 저항 할 수 있는지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걱정한 것처럼 누군가 갑자기 그녀의 팔을 잡아챘다.

그녀는 팔을 잡아빼려 저항하다가,

그녀를 잡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를 잡은 사람은 여자였다.

그녀의 또래처럼 보이는 여성의 피부는 옅은 에메랄드색이었고,

머리카락은 오렌지색이었다.

그녀를 보고 미소를 지은 여성의 뺨에는 

뱀 머리처럼 생긴 금속 장신구가 박혀있었다.


"이리와."


여성의 눈은 짐승의 눈처럼 번득였다.


"나도 그들을 봤어."


그녀는 여성을 따라,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판넬로 지어진 

조립식 건물 거주구들 사이의 어두운 골목을 이리저리 빠져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길은 

지린내와 오래된 땀냄새, 하수구 냄새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 냄새로 가득차 숨쉬기도 힘들었다.


그녀가 구부러진 골목길 사이로 점차 내려갈수록,

그녀를 뒤쫓던 남자들의 발걸음과 그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희미해져갔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이 내려온 길을 되돌아 갔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그녀 가까이에도 오지 못했을 것이다. 


점점 더워졌다.

그녀는 주변에 강력한 스피커가 숨겨져있는 것처럼 

울려 퍼지는 음악의 소릿결이 그녀의 아래에서 울리는 걸 느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소릿결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고 명향(鳴響)하는게 느껴졌다.


그녀는 물을 마시고 싶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갑자기 극심한 갈증에 휩싸였다.


여성은 그녀를 밖을 훔쳐볼 수 있는 작은 현창이 달린

차단막처럼 거대한 문 앞으로 인도했다.

여성이 초인종을 누르자, 현창이 옆으로 열렸다.

열린 현창 사이로 녹색 빛이 새어나왔다.


"엘레브(Elev) 있어?"


여성은 다짜고짜 질문을 날렸다.


"있어."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철컹거리며 문이 열렸다.

따스한 공기가 안에서 새어나왔고,

뒤이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강렬하고 쿵쿵거리는 음악이었다.


한순간 그녀는 여기서 그만 몸을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그냥 여기서 돌아가고 싶었다.

조금 전까지 그녀가 있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 열기, 

그녀가 도망쳐야 겠다고 생각하는 의지를 잊게 만드는 열기 때문에 

그녀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여성이 그녀를 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들은 플라스텍(Plastek)으로 표면처리된 긴 계단참 앞에 서 있었다.

벽재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콘크리트 블록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바닥은 쏟아진 음료들로 인해 끈적거렸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로 인해, 

말소리를 알아 듣기 조차 힘들었다.


"내려가."


여성은 그녀에게 말하며, 격려하려는 듯이 웃어보였다.

그들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곧,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여러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조명 아래에서 

제멋대로 신체를 흔들며, 반대편 벽에 다양한 그림자를 새기고 있었다.


여긴 대체 어떤 목적으로 지어졌을까?

대규모 회의실?

황제교 성당?


어떤 목적으로 지어졌던 간에 지금은 전혀 다르게 쓰이고 있었다.


강렬하고 선정적인 색깔의 조명들이 

세찬 음악 소리에 맞춰 잔망스럽게 박동했다.

그녀는 짙은 싸구려 향수 냄새들 사이로 

거친 땀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레지(Rezi) 특유의 알싸한 냄새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는,

다양한 색의 연막으로 반쯤 가려진 벽화를 등지고,

만화경처럼 변화무쌍한 조명들에 싸인 남자들과 여자들이 

불빛이 휘황찬란한 무대 위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무대는 인파로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고,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갑갑함에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그냥 계속 가."


여성이 그녀의 등을 밀며 말했다.

둘은 좁은 바늘귀에 실이 들어가듯 어찌어찌 인파를 지나, 

그 사이에 섞여 들었다.

갑자기 그녀의 손에 음료가 한 잔 주어졌고,

그녀는 내용물도 확인하지 않고, 마셨다.

음료가 들어가자, 그녀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좀 여유로워진 그녀는 이 음악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해졌다.


얼굴들이 어둠 속에서 계속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얼굴들은 전부 상기된 모습으로 취해있었고,

모두들 그녀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모두 친절하고 멋져보였다.

그러니까 모두의 얼굴이 친절하고 멋져보였다.

그녀는 프리즘처럼 번쩍이면서 물결치듯 움직이는 

그들의 육체를 뒤덮은 얇은 금속 외골격과 

입체로 보이는 머리 위 천사 고리들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 사람들은 이런 걸 다 어디서 구했을까?

지루한 작업시간에 전설처럼 들었던, 

공업구역 깊숙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상류층 자제분들이 부모들에게 들키지 않고

술과 마약에 취한 채로 쓰러질 때까지 미친 듯이 놀기 위해 내려온 걸까?


그녀의 눈에 그들은 이국적인 짐승들처럼 보였다.

어떤 자들은 탐스러운 깃털이 있었고,

어떤 자들은 장대한 뿔이 달려 있었다.

번쩍이는 금속으로 장식된 화려한 비단을 두르고,

낡은 고딕형 아치 천장 아래 어두운 그림자 속, 

명멸하는 색채 사이에서 모두가 하나가 되어 사지를 흔드는 광경은

잠들기 전 듣던, 

믿기 어려운 기이한 이야기 속에나 나올 법한 괴상망측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한동안 잠자코 춤을 추었다.


그녀를 이리로 데려온 여성은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그녀는 크게 괘념치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다.

언제나, 어디서나 규칙이 그녀를 얽매고 억압했다.

그녀가 받아야 했던 교육은 또 어떤가,

이미 정해져 있는 답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기만 하는 

지루한 황제교의 교리문답(敎理問答)과 

기계적으로 암기해야만 했던 주입식 교육,

그녀는 언제나 마음 속 한켠에서 자유를 갈망하며,

숨죽인 채, 한껏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녀는 사지를 자유롭게 움직이려 애썼지만 뭔가 어색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전에 자유롭게 움직여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빠르게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토파즈(Topaz)가 그걸 더 쉽게 만들어줬다.

그들은 자유를 만끽하는 그녀를 에워싸고 함께 움직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에 손을 뻗고, 

그녀의 팔에 손을 뻗었다.

어느새 그녀는 시간이란 개념을 잊어버렸다.

더 많은 음료가 그녀의 손에 쥐어졌고,

그녀는 손에 쥐어지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 마셨다.

그리고도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뒤,

갑자기 그 여성이 돌아왔다.


그 여성은 그녀를 데리고, 

열기가 가득한 휘황찬란한 방을 뒤로 한 채,

좁고 미끄러운 계단을 따라 더 아래로 내려갔다.

사실 그녀는 이제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기에

시끄럽게 번쩍이며 북적이던 곳을 벗어나자 약간 안심이 되었다.

어찌 됐건 잠깐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아보였다.


음악 소리마져 들리지 않게 되자, 문득 한기가 몰려왔다.

땀에 흠뻑 젖은 그녀의 옷이 그녀의 피부에 차갑게 달라붙었다.


"워데로 카눈 거에욕?"


그녀는 자신의 술취한 목소리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시간이 됐어."


여성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네게 적합한 게 있어."


그녀는 점점 그 여성을 따라가는 게 힘겨워졌다.

어떤 계단은 한참을 내려갔고, 

또 어떤 계단은 한참을 올라갔다.

어느 시점에서 그녀는 자신이 건물 밖으로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잠시 후에 그녀는 또다시 건물 안에서 걷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매우 피곤했고, 끔찍한 두통에 머리가 아파왔다.


"물 좀 엎서요?"


그녀가 묻자.


"우리가 가는 곳에 있어."


즉시 대답이 돌아왔다.


"물 좀 마시러 가지고."


얼마를 더 걷자, 그들 앞에 또 다른 육중한 문이 하나 나타났다.


굉장히 어두운 장소였지만,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옆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너무 추웠다.


그들은 문을 지나쳐 더 많은 계단을 내려갔다.

이제 길은 더욱 좁아져서,

한껏 취한 그녀는 비틀대다가 팔을 여러차례 벽에 긁혔다.

그녀는 여기서 멈추고 싶었다.

머리가 맑아질 때까지 그냥 바닥에 앉아있고 싶었다.


여성이 갑자기 멈춰섰다.

그곳은 아주 좁고 텅빈 방이었다.

천정에서 내리쏘는 조명이 너무나 강렬해서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물 한 잔이 간절했다.


병색을 보이는 누런 피부를 지닌 남자 하나가 

목깃이 없는 셔츠 위로, 

전신을 덮는 짝 달라붙는 검은색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의 목덜미에는 매듭 문양 문신이 드러나 보였다.


"당신 이름은요?"


그가 매우 친절하고 쾌활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앤(Ianne)."


그녀는 마지못해 답변했다.


"이앤(Ianne).

흔하지 않은 이름이네요.

마음에 들어요.

좋은 시간 보내고 있나요?"


"물 한 잔만 마시면 좋겠어요."


"좋아요.

그럼, 날 따라오세요.

우리가 당신을 위해 뭔가를 가져오죠."


그녀가 자신을 데려왔던 여성이 벌써 사라졌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무언가가 그녀의 팔을 잡아챘다.

다음 순간, 무언가가 억지로 그녀의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방의 조명이 조금 어두워졌고,

그녀는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둘러싸고있다는 

막연한 느낌이 다시 찾아왔다.


그녀의 귀에 

누군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거친 호흡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해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주위를 돌아보자,

주위의 벽에 달린 무수히 많은 금속 선반들과

그 선반들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는 유리 용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치약처럼 생긴 용기들과 

풀무처럼 생긴 기구들, 약물이 들어있는 작은 유리병,

그리고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굵은 전선들이 들어있는 기계들도 보였다.


그녀를 중심으로 푹신해 보이는 안락의자가 주위에 여럿 놓여 있었다.

어둠에 가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휘몰아치는 불안감이 그녀를 감쌌다. 


이곳에서는 아무런 음악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조용하고 차가운 느낌만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밖으로 되돌아갈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여귀가 어데에여?"


그녀가 물었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그들은 묵묵히 그녀를 의자에 강제로 앉혔다. 

그 의자는 등받이가 뒤로 젖혀지는 안마 의자처럼 생겼지만,

딱딱하고 불편하기만 했다.


그녀는 잠시 저항할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아직도 취기가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뭔가를 똑바로 생각하고, 실천할 수가 없었다.

그 사이, 무언가가 그녀의 양쪽 손목을 단단히 잡아 채 고정시켰다.


"여기 어디냐구여?"


그녀가 다시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그녀의 머릿속에 교리문답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켜야 마땅한 규칙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집이 떠올랐다.

지루하지만 확실하고 안전을 보장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얼굴 하나가 희미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얼굴이 누구의 얼굴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움푹패인 볼을 지닌 무표정한 그 얼굴이

그녀를 향해 갑자기 웃음을 짓자,

그녀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는 공포에 빠져 공황에 빠져버렸다. 


"네가 이앤(Ianne)이니?

긴장 풀어.

넌 네게 딱 맞는 곳에 있는 거야."


그녀는 그 얼굴을 차버리려 했지만,

발목도 벌써, 무언가가 단단하게 구속하고 있었다.

위를 올려다본 그녀의 눈에 

냉혹한 조명에 반짝이는 차가운 주사바늘 여러 개가 보였다. 

공포와 절망감이 그녀를 빠르게 잠식했다.

그녀는 두려움에 익사할 것만 같았다.


"풀어줘요."


"아무 것도 걱정할 거 없어."


남자가 달래듯이 말하며 주사바늘 하나에 손을 뻗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병에 들어있는 투명한 액체가 

가는 주사기로 서서히 흘러들어 갔다. 


"다 괜찮아 질거야."


"나가고 싶다구요!"


그녀는 울면서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왜 나가고 싶어하는 거야?"


남자는 주사기의 공기를 빼기 위해 바늘 부분을 때리며 물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양 옆을 흘깃 거리며

눈으로 위 아래를 훑어보았다.

마침내 빛과 어둠에 적응한 그녀의 눈은 

황혼시(黃昏視)로 그의 시선을 따라 주변을 살폈다.


그녀 주변에 있던 수많은 안락의자에는

단 하나도 빈 의자가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거기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미동도 하지 않고 조용히, 

오직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넌 여기서 훨씬 더 쓸모가 있을거야."


그가 기계 하나를 작동시키면서 말하자.

그녀의 옆에 있던 기계 장치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낮게 쿵쾅거리는 기계음은 그녀에게 괴수의 심장박동처럼 들렸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혐오감과 공포에 질려 질식할 지경인 그녀가 겨우 입을 뗐다.


"긴장 풀어."


그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매번 같은 이야기지만,

여기는 누구나 꿈꾸던 장소야.

자, 이제 네게, 내가 뭔가를 줄거야.

뭔가 좋은 걸.

그리고 네가 그걸 받게 되면,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넌 영생을 누리게 될꺼야.

영원히."



2 장에서 계속…





2020 년도 8월쯤에 개인적으로 지인들과 보기 위해 번역한 무수정 1 쇄입니다. 

엄청난 오역과 의역이 들어 있으므로 

원문을 읽으실 수 있는 분은 원문으로 읽으시기를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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