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어던 프롤로그(Leviathan Prologue)

 





Quote




          나는 보았다.


                 패배의 쓴잔을 마시고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그 모습(katabasis)을


                                                                               정신골자(精神骨子)를


                                                       그 피의 이음매들을


                            갑작스런 단절과 성장


          정류(正流)와 역류(逆流)


              나는 그 모든 걸 보았다.


          그럼 시작해 보지.





프롤로그(Prologue)


파멸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마저 모두 사라지고 오직 절망만이 남는 마지막 순간, 

사람들은 서로에게 등을 돌린다.

극심한 공포가 이들의 오감을 지배하면,

사랑하는 이들과 영원하리라 믿었던 끈끈한 관계마저 잔혹하게 끊어진다.

어머니건, 아버지건, 아들이건, 딸이건

그런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최후의 시간 인간은 그저 짐승에 불과하다.


두려움과 흥분으로 전율하며 비명을 지르는 짐승.

공허한 어둠 속에서 발버둥치는 짐승.

살기 위해 발악하는 짐승.


스하으로(Tharro)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저 괴물들이 인간 목소리를 알아 듣기라도 한다는 듯이 자비를 구하며 몸부림쳤다.

마치 놈들이 인간에게 연민을 가지고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제발!"


스하으로(Tharro)는 제풀에 방바닥에 떨어져 구르면서 놀라 숨을 헐떡였다.

퍼뜩 정신이 든 그는 주변을 슬쩍 돌아보았다.

여기는 그의 집 침실이었고, 아직 한밤중이었다.

마누라인 발라시아(Valacia)는 그가 방금 떨어진 침대 위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여기엔 날개 달린 괴수도 없었고, 무시무시한 형상의 괴물도 없었으며, 사람들의 비명도 없었다.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

스하으로(Tharro)는 갑자기 몰려든 안도감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꿈이었다니.

그래, 그게 전부였어.


하지만 전부 꿈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한 장면들이었다.

지독한 허기에 시달리는 존재가 스하으로(Tharro)의 육체를 탐하며,

그의 심장과 뼈를 압박하던 그 무시무시한 느낌은 여전했다.


스하으로(Tharro)는 잠시 그대로 서서, 

머리를 비우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해보려고 애썼지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나는 그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결국 그는 차가운 밤공기도 좀 들이마시고, 

밤하늘의 별도 좀 올려다 보며 머리를 식힐 요량으로 옷을 입고 밖으로 나섰다.


그냥 꿈이었어.



이렇게나 심한 악몽에 시달리고, 꿈에서 깬 이후에도 그 영향이 가시지 않다니,

스하으로(Tharro)에게 이런 경우는 어린 시절 이후 처음이었다.

거대한 존재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악몽의 조각이 그의 주변을 계속 맴돌며 메아리쳤다.


팔이 네 개였던 거대한 존재.


그 존재는 숲의 거목들보다 훨씬 컸고, 신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거대한 존재였지만,

그 크기에 걸맞지 않게 날렵하게 움직였고, 낫으로 풀을 베듯이 주변을 무차별적로 공격했다. 

또한 감히 똑바로 쳐다볼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무서운 얼굴을 가진 존재의 융기된 두개골 위로는 칼날같은 뼈가 돌출되어 있었다. 


이 역겨운 존재는 혐오물 그 자체였다.


놈의 한쪽 얼굴은 화상을 입었는지 새까맣게 타들어가서 숱덩이같이 타고 남은 힘줄들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스하으로(Tharro)를 진정한 공포로 몰아넣었던 건, 놈의 흉칙한 겉모습이 아니었다.

그보다 이 곳에 놈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 세계에 있어 무슨 뜻인지,

즉 괴수의 본질적인 존재 의미를 이해했기에 그는 머리 끝까지 공포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놈은 그저 단순히 죽음을 가져오는 존재가 아니었다.

놈은 이 세상에 마지막이자 영원한 죽음을 가져올 언짢은 단말마의 흉조,

하빈저(Harbinger)였다.


"황제시여 저를 보호하소서."


스하으로(Tharro)는 찬바람을 쐬면 놀란 마음이 조금 진정될까 싶어

거주구역에서 벗어나 암벽 사이 좁은 길로 내달리며 나지막히 기도를 올렸다.

그는 작은 나무와 초목들이 우거진 벌판을 헤치며 지나갔다.

그가 지나간 자리엔 작은 식물 굴길이 생겨났다.

마침내 초수를 벗어난 그의 눈앞에 산자락이 펼쳐졌다. 

그리고 스하으로(Tharro)는 산자락에 여러 불빛들이 일렁이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대체 이 오밤중에 누가 깨어있는 거지?


스하으로(Tharro)는 자신도 모르게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이렇게 늦은 심야에 어둠 속에서 백여 명, 아니, 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게 보였다. 

그들 중 몇몇은 스하으로(Tharro)도 아는 사람이었지만, 대다수는 모르는 자들이었다.

한밤중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광경은 참으로 기이했고,

어딘지 모르게 약간 공포스러웠다.

그들 모두가 산둘레에 그냥 서서, 어두운 밤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의 얼굴은 어둠이 드리워진 해골들처럼 표정없이 창백했으며,

모두가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스하으로(Tharro)는 위장이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왠지 모르게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 지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숲이 끝나는 이 초지(初地)에 왜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있는 지를 알았다.


"꿈,"


스하으로(Tharro)는 주변의 젊은 여성에게 다가서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러자 그녀는 숲을 바라보며 몸서리를 치고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하빈저(Harbinger)."


스하으로(Tharro)는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왔다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차갑고 압박감을 주는 그 단어의 어감이 너무나 낯설고 불편했다.

이 단어를 자신도 모르게 직접 말했다는 게, 너무나 후회되었다.

그녀는 그런 그와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스하으로(Tharro)의 머리에 악몽 속에서 들렸던 

날카로운 손톱이 무언가를 긁어대는 소리와 키틴질이 삐걱거리며 냈던 소음이 다시 떠올랐다.

그걸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혈관에서 피가 용솟음치는 느낌이 들었다.


괴수의 발톱이 그의 배를 찢어발기고, 

빠져나온 그의 장기를 탐욕스럽게 탐하던 그 광경. 


"어떻게 우리 모두가 똑같은 꿈을 공유할 수 있죠?"

스하으로(Tharro)가 물었다.


"조짐이기 때문이죠,"

그녀가 속삭이듯 답했다.


"무슨 조짐 말입니까?"


"종말의 조짐."



사르디아(Sardia)는 움찔하더니, 올라가던 몸을 멈추고 피부를 긁었다.

그녀는 높게 솟은 굴뚝 옆에 박혀있는 사다리를 타고, 

지면으로부터 벌써 100여 피트[약 30미터(m)] 이상되는 높이까지 올라가 있었다.

덕분에 매연이 심한 상황에서도 살라미스 군락(Salamis Hive)을 가장 넓게 조망할 수 있었다.

사실 그녀는 아직까지도 이 도시가 얼마나 거대한 지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보는 자로 하여금 정신을 멍하게 만들 정도로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그녀가 눈을 돌리는 곳마다 수천여 개의 거주 구역과 공장지대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부패의 결과와 산업화의 부산물이 가득한 곳이었다.


자욱한 스모그 사이로 괴물처럼 거대한 그림자들이 바쁘게 오르내렸다.

다른 행성이나 다른 성계(Star System)로 화물을 실어나르는 

듀으라 우주항(Port Dura)의 화물선들이었다.


사르디아(Sardia) 역시, 

우주를 누비는 저 화물선들의 그 엄청난 엔진에 대한 이야기를

평생에 걸쳐 귀에 딱지가 앉도록 되풀이해 들었지만, 아직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두터운 대기오염 사이로 화물선들이 오가는 모습은 그녀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켰기에

그녀는 잠시 동안 그 광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르디아(Sardia)는 녹슨 강철 가로대에 더 많은 피부를 헌납하며 다시 사다리를 올라갔다.

자칫 아래를 내려다봤다간 기력이 빠져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할까봐,

그녀는 시선을 굴뚝 끝에 고정하고 위만 올려다 보고 있었다.

사르디아(Sardia)는 재호흡기(Rebreather)를 착용하고, 

용접으로 단단하게 보강된 두꺼운 보안경을 착용하고 있었지만,

매캐한 매연이 너무나 강해 양눈에서는 연신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때 기생충 하나가 그녀의 손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그녀는 혐오감에 혀를 차며 놈을 손에서 쳐냈다.

벌레들은 지면보다 여기에 훨씬 더 많았다.

놈들은 굴뚝탑의 패여진 부분을 따라 제멋대로 기어다니는 중이었다.

메뚜기처럼 생긴 놈들도 있고, 바퀴벌레와 비슷하 생긴 놈들도 있었지만,

하나같이 단단한 갑옷처럼 번들거리는 표피를 가지고 있었다.

뱀처럼 생긴 놈들도 있었는데, 

비슷하게 생긴 놈들끼리 모여 구렁이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물론 사르디아(Sardia)는 곤충학자나 생명공학자는 아니었다.

그런 그녀 조차 여기의 모든 벌레들은 

기존의 벌레들과 매우 흡사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생명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레기움(Regium)의 토착 생명체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런 벌레들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굴뚝탑 위엔 대형 생물체는 없었다.


만약 여기서 대형종을 마주했다면, 

죽음을 결코 피할 수 없었을 거라는 불안한 생각이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빌어먹을 놈들!"


다른 기생충이 그녀의 팔뚝에 느껴지자, 그녀는 다시금 쇳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번엔 충분히 빠르지 못했다.

그녀가 털어내려는 찰나에, 놈은 그녀의 피부를 찢고 그녀의 근육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삽시간에 십여마리의 이물적인 존재가 그녀의 팔 안쪽에서 느껴졌다.

순간의 고통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정제소의 다른 노동자들은 이 기생충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

틀림없이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르디아(Sardia)가 처음 이 기생충에 대해 언급했을 때, 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후, 그녀가 이 기생충에 대해 경고하며 조치를 취하려 하자, 

그들은 매우 흥분하며 공격적으로 나왔다.


그녀가 왜 그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그 이유를 알기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렸다.

그들은 이 생명체들을 좋아했다.

그녀는 가끔 노동자들이 일하는 동안 피부의 일부분이 툭 불거져 나오거나, 

안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처럼 꿈틀대는 모습을 보았다.

심지어 그녀는 일부 노동자들의 근육 위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 형상이 움직이는 걸 봤지만, 그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노동자들 중 그 누구도 이걸 심각한 위협이나 문제로 보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이 생명체들이 자신의 몸 안에 들어오는 걸 흔쾌히 받아들이고 공생하는 걸 즐겼다.

정제소 십장조차 진심으로 경고하는 사르디아(Sardia)의 충고에 별 관심이 없어보였다.

결국 그녀는 말로 어떻게 해보려는 건 포기하고, 직접 굴뚝탑을 오르기로 결심했다.


지금까지는 아직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뒤로 물러서서, 

살라미스(Salamis)가 이대로 먹히는 걸 좌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녀는 이 괴현상을 반드시 막기로 마음먹었다.


굴뚝 끝에 거의 다다른 그녀는 굴뚝탑의 사다리가 굴뚝 끝까지 이어져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다리의 마지막 부분 가로대는 사라지고 없었기에 굴뚝 꼭대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맨 마지막 가로대 위에 위태롭게 올라서서 굴뚝 끝에 최대한 손을 뻗어야 겨우 가능할 판이었다.

즉, 슬쩍 아래를 바라보기만 해도 아득한 현기증이 몰려오는 이 고공에서

녹슨 철 가로대 하나에 의지해 양발로 균형을 잡는 신기에 가까운 곡예를 부려야만 했다.

거기에 의지할 데 하나 없는 이곳에서 이 재주넘기를 하는 동안, 

낡은 굴뚝탑의 금이간 석재 벽면 사이로 

연도(煙道) 가스가 간헐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상황이라는 것도 고려해야만 했다.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볼 때, 객관적으로 아무리 좋게 생각해 봐도 무리처럼 보였다.


"다른 방법은 없어,"


그녀는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겁쟁이처럼 굴지마."


사르디아(Sardia)는 굴뚝탑 아래 구멍에서 이 기생충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는 걸 직접 목격했다.

이 굴뚝탑이 놈들의 둥지인게 분명했다.

단언하건대, 놈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번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기생충들의 오염이 군락(Hive) 전체로 퍼지기 전에 막아야만 했다. 


짧은 기도문을 읊조린 그녀는 서둘러 마지막 가로대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벽에 몸을 기댄채 최대한 위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굴뚝 끝 가장자리가 그녀의 손가락 마디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졌다.

그녀는 손가락을 굽히고 손을 당겨 굴뚝 끝자락을 단단하게 잡은 뒤,

거의 허공에 뜨다시피 하며 몸을 들어 올렸다.

정제소에서 겪어온 거친 노동의 나날은 그녀를 강단 있는 강한 여성으로 만들었다.

지지대 하나 없는 허공을 팔힘만으로 올라간 그녀는, 

디딜만한 발판을 찾자마자 그곳에 발을 디디고 탑에 몸을 밀착했다.

마침내 굴뚝 끝에 도착한 그녀는 

몸의 반쯤을 가장자리에 걸친 채로 몸을 안쪽으로 밀어 넣고, 용감하게 굴뚝 안을 살펴보았다.

화산 분화구에 도달한 느낌이 들었다.


일렁이는 열기가 그녀의 얼굴을 태우며 솟구치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슬린 그녀의 머리카락에선 탄내가 나기 시작했고,

양쪽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재호흡기(Rebreather)의 끈을 더욱 단단히 잡아매고,

눈을 연신 끔벅여 맹렬히 흐르는 눈물을 조금이라도 날려 보낸 뒤,

산화물로 착색된 보안경의 색유리를 통해 뭔가를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옥좌시여,"


사르디아(Sardia)는 자신도 모르게 기도문을 읊었다.

굴뚝탑 안쪽은 완전히 기생충 놈들의 세상이었다.

매연이 잠시 가시자, 무시무시한 공포의 왕국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욕지기가 치받쳐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꿈틀대며 기어다니는 놈,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가는 놈, 날아다니는 놈까지 

어둠속에서 번성하는 놈들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최소 백만은 넘어보였다.

게다가 그 다양성은 일일이 셀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몇몇은 조금 전 그녀의 피부를 파고든 놈들과 비슷해 보였지만,

더 괴상망칙해 보이는 놈들도 많았다.

보라색 껍질을 가진 거대한 곤충같은 생명체도 있는가 하면,

핏빛으로 번들거리는 뇌를 드러낸 채, 연기 속을 풍선처럼 떠다니는 생명체도 있었다.


지옥도와 같은 장면을 직접 마주한 사르디아(Sardia)는

이 광경을 보면 볼수록 자신의 뇌에서 이성이 빨려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 뭔가 행동할거면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지체했다간 이성이 바닥나 아무것도 못하게 될 터였다.


그녀는 여기까지 소중하게 메고 올라온 잡낭을 풀고, 

기폭제와 폭발물을 꺼내 폭파 준비에 들어갔다.


"모든 것은 신황(God Emperor) 폐하를 위해."


사르디아(Sardia)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말을 마친 그녀는 굴뚝 안쪽 가장자리에 폭발물을 살그머니 내려놓았다.

시한장치가 0에 도달하는 데에는 불과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섬광과 화염이 그녀에게 밀려들었다.


사르디아(Sardia)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피부는 물집이 잡히더니 타들어갔고, 그녀의 폐는 고통으로 가득찼다. 

숯덩이로 변한 그녀는 굴뚝 가장자리로 떨어지면서 조각조각 부서졌다.

폭발의 화염은 그녀의 피부만 벗겨내 그 속을 드러낸 게 아니라,

소름끼치는 진실까지 함께 드러냈다.


사르디아(Sardia)는 마지막 순간 진실을 보았다.

이 벌레같은 생명체는 오직 그녀의 머릿속에만 존재했던 환상이었다.

다른 노동자들이 옳았던 것이다.

그녀가 보았던 발톱 달린 생명체와 날개 달린 생명체가 있던 자리에는 오직 재 가루와 먼지 덩어리만 있었다.

그녀는 보기 좋게 기만 당한 것이다.


고통과 원통함이 뒤섞인 그녀의 비명은 저 아래 거리에 몸이 부딛히는 순간 잠잠해졌다.




"돌아가서 자기 할 일들이나 해."


벨티스(Beltis)는 골목길에 진을 친 폭도들을 묵묵히 응시하며 말했다.

언제든지 허리춤의 전기 도리깨를 꺼낼 것처럼 손을 도리깨 손잡이에 가져다 대고있는 그녀의 담담한 어조는

상황을 절충할 의도가 전혀 없다는 걸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녀 앞의 폭도들도 자신들의 주장을 굽힐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놈들은 마치 그녀의 강경한 모습이 익살스런 우스갯짓처럼 보인다는 듯이 피식거렸다.

그녀는 수년 동안 근무하면서, 처음으로 마주한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에 내심 당황했다.


놈들이 어찌 감히 그녀를 이런 눈길로 쳐다본단 말인가?

놈들 주제에 감히 그녀에게 말대꾸?


그녀에겐 세상의 중심이 뒤틀린 듯한 충격이었다.

하층민 쓰레기들 주제에 주제넘게 그녀의 말에 반항하다니 세상이 정말 뭔가 이상해진게 아닌가?


"갓하스 쿨룸(Gathas Kulm)님께서 그러라 하시면, 일터로 돌아갈 겁니다."


이 폭도들을 이끄는 우두머리이자, 

어딘가 사악해 보이는 회색 피부를 가진 사내의 이름은 티롤(Tirol)이었다. 


"우린 그를 위해 일합니다, 당신이 아니라.

그니까… 뭐…"


놈은 능글맞게 히죽거렸다.


"우리는 전부 그를 위해서 활동했다는 거죠."


벨티스(Beltis)의 마음 속에서 놈들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줄어들었다.

이 하층민 쓰레기들은 쿨룸(Kulm)이 없었다면 벌써 한참 전에 죽을 목숨들이었다.

그가 직접 놈들을 한놈씩 똥통에서 건져내, 가르치고, 키웠다.

무의미한 쌈박질이나 해대거나, 뒷거리에서 협잡질이나 일삼던 준범죄자놈들을 데려다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힘을 지닌 조직의 일원으로 만든 것이다.

고로 그가 없는 놈들은 끈 떨어진 마스크 만큼이나 소용없는 잡배나 마찬가지였다.


쿨룸(Kulm)만이 놈들을 똑바로 부릴 수 있고,

놈들을 데려다가 뭔가 제대로 된 결과를 산출하도록 일을 시킬 수 있었다.

장래를 보는 그의 통찰력과 노력을 멈추지 않는 그의 강한 추진력.

지금의 놈들에겐 그것만이 세상에서 의미있는 것이었다.


"그분을 위해 일하겠다,"


벨티스(Beltis)는 화재 대피용 비상계단을 타고 골목길로 내려가며, 침착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와도 일을 안하시겠다."


그녀는 놈들이 이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의 장을 열어줄 것이라 생각하도록,

최대한 중립적인 목소리를 유지하려 애썼다.


티롤(Tirol)은 눈썹을 치켜들며 외쳤다.


"어이, 그거 협박이야?

우리가 이 계획에 대해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는 거 기억하나?"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경무관(Enforcer)나리께서, 

이 모든 일의 배후가 쿨룸(Kulm)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시면 과연 어쩌시려나?"


그는 동의를 구한다는 듯이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그야말로 겁나 쪽팔리는 일이 벌어지겠지, 

네 그 쥐똥만한 대가리는 그딴 것도 예측 못하냐?

전쟁터에 보내기 위해 시민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저 산더미같은 보급품들 말야.

전체 선적을 통째로 쿨룸(Kulm)이 뒤로 빼돌려 꿀꺽하셨다는 거 모르시나봐.

우리 병사들이 최전선에서 죽을 힘을 다해 싸우면서 그토록 애달프게 기다리는 상황에서,

컨테이너 하나나 둘도 아니고, 선적된 화물 전체를 슬쩍해서 이득을 취한다니,

생각만으로도 진짜 끔찍하네.

특히 우리가 저 짐들을 가져다가 누구에게 팔아먹는지를 안다면 더 큰 난리가 날걸.

솔직히 여기 이 일과 관련된 사람들 모두가 

제국에게 최고의 이득이 돌아가도록 일하는 게 아니란 것쯤은 세 살배기 오줌싸개도 다 알지,

사실이 그렇잖나?"


벨티스(Beltis)는 이제 그들과 불과 30~40 센티미터(cm) 떨어진 곳까지 다가가 있었다.


"정말 경무관(Enforcer)들이 모를거라 생각해?

짭새들이 여기 내려와서 문을 두들기지 않는 것이 그저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하나보지?

구제불능의 골통이란 건 알았지만, 이런 병아리오줌일줄은 몰랐네.

머리가 달렸으면 생각 좀 해, 경무관(Enforcer)들도 그분과 일해.

듀으라 우주항(Port Dura)의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말야."


그녀의 말에 티롤(Tirol)은 오히려 자신감이 붙는 것처럼 보였다.

놈은 으스대며 앞으로 나서며, 

동료들의 지지를 불러일으킬 요량인지 입이 찢어질 듯이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이년 이거 완전 과거에 살고 있구만.

그건 쿨룸(Kulm)이 여기서 방귀좀 뀌던 전성기때 이야기지,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좀 달라.

거진 한 달째 그 친구 본사람이 아무도 없거든."


티롤(Tirol)은 이제 다 제 것인 양 한가로이 그녀 주변을 걸으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소문엔 그 친구 뒤졌다던데.

그리고 그 친구 없는 넌, 숏도 없는 암캐에 불과하니까 그 자식 살아있는 척 연기하는 거 아냐."


벨티스(Beltis)는 천천히 폭도들을 돌아보았다.


"너 지금 나한테 '년'이라고 했니?"


뿌리 깊은 구습에 사로잡힌 몇몇이, 

그런 행동 자체가 그녀를 모욕하는 행위라는 걸 잊어버리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왜?"


티롤(Tirol)은 당당한 척 일갈했지만,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의 무의식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넌 쿨룸(Kulm)의 깔치였잖아.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기쁨조.

그런 네년이 여서 감히 우리에게 명령할 권ㅎ-"


벨티스(Beltis)의 도리깨가 목을 나꿔채는 바람에 놈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녀는 놀라 기침을 내뱉는 티롤(Tirol)을 바라보며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살이 타들어가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며 퍼져나갔다.  

무릎이 꺾이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목에서 무기를 풀려고 애쓰는 바람에

놈의 손가락도 타들어가며 고약한 연기를 피워대고 있었다.


티롤(Tirol)의 부하 중 하나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려 했지만,

벨티스(Beltis)의 자동권총 총구가 자신의 미간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만두었다.


그녀가 바랬던 대로 기세가 완전히 꺾인 폭도들은 

완전히 불덩이로 변해버린 티롤(Tirol)을 보자, 시키지도 않았는데 뒤로 흠칫 물러섰다.


"쿨룸(Kulm)님은 살아있어,"


벨티스(Beltis)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으르렁 거렸다.

그녀는 빼어든 권총으로 골목길 끝, 스모그 사이를 달리는 차량들이 다니는 도로를 가리켰다.


"이 지역은 지옥이나 다름 없게 변해가는 중이지만, 경무관(Enforcer)들은 아무것도 안해."


이제 티롤(Tirol)은 그녀를 향해 무의미하게 손을 뻗어 허공을 긁어대며,

알아 들을 수 없는 비통한 비명을 내지르는 중이었다.

그의 얼굴은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 모두, 창고에서 일어났던 폭발과 샆하(Sapha)에서 분신한 바보놈들에 대해 알고 있어.

뭔가 잘못되어가는 건 분명하지만, 과연 누가 그걸 지적하고 해결하려 들까?

살라미스(Salamis) 한참 밖에서 세월아 네월아 하시는 우리 행성 총독님?

아니면 잘난 울트라마린(Ultramarine)들?

걔들한테 일반 시민들은 신경 쓸 가치도 없는 존재들이야.

그치들이 무슨 신조를 가지고 사는지 우리같은 사람들이 알게 뭐야.

놈들은 절대…"


벨티스(Beltis)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흐릿한 감시 카메라에 귈리맨(Guilliman)의 아들들로 추정되는 모습이 흐릿하게 잡혔을 뿐이지만

그녀를 불안하게 만드는 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쿨룸(Kulm)님께서 이 난장판을 처리해 주실거야. 

다른 모든 걸 깔끔히 정리해 주신 것처럼 쿨룸(Kulm)님께서 해결해 주실거야."


그녀는 도리깨의 전원 스위치를 끄고, 티롤(Tirol)의 목에서 거칠게 무기를 잡아뺐다.

놈은 시체처럼 바닥에 무너지면서,

아직도 연기가 새어나오는 완전히 망가진 목 주변의 상처를 움켜쥐고 흐느꼈다.


"돌아가서 일해."


그녀는 피가 뚝뚝 흐르고 군데군데 숯덩이가 된 살점이 붙어있는 도리깨를 들어 

경고의 의미로 폭도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오줌통을 지 어미에게 돌려주고."


놈들은 즉각 그녀의 말에 따랐고, 폭도들의 반란은 시작만큼이나 빠르게 끝장이 났다.

하지만 티롤(Tirol)의 몸을 아수라장에서 끌어내는 놈들 몇몇이 

그에게 슬그머니 사과의 말을 건네는 모습을 본 그녀는 

이놈들이 얼마나 빨리 다음 반란을 시도할지가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이런 불상사는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웬지 모르게 그녀는 이게 마지막 반란행위가 아닐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모든 것이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벨티스(Beltis)는 골목길 양 옆에 줄지어 선 창문 없는 건물들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귀에도 멀리서 들리는 총소리와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듀으라 우주항(Port Dura)은 점점 통제가 안되는 무법지대로 변해가고 있었다.


벨티스(Beltis)는 고개를 돌리고는 하인배들에게 명령을 외쳐며 아버지의 개인실로 향했다.

유전자 확인을 마친 잠금장치가 열리자, 문을 통과해 계단을 오르던 그녀는 

계단 꼭대기에서 잠시 발을 멈추고 문들이 늘어선 복도를 내려다보며, 

그녀의 아버지께 방문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듀으라 우주항(Port Dura)의 실질적 지배자인, 

막강한 갓하스 쿨룸(Gathas Kulm)님께 충성을 맹세하러 왔던 그 모든 자들을 말이다.

수년 동안 위대하고 멋진 사람들이 양떼처럼 이곳에 몰려왔었다.

심지어 살라미스(Salamis) 주지사마저 이곳에 와서 아버지 앞에 몇번이고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기 전의 이야기다.


그녀의 아버지는 잘나셨다는 지구의 상국(相國)[High Lords of Terra]께서 

레기움(Regium)에 친히 관심을 가지시고, 그가 계획한 완벽한 정치적 균형을 망치기 전에,

사교계에서도 소문날 정도로 따분한 인물이자, 

복지부동의 화신이라 할 수 있는 세으록(Seroc)을 레기움(Regium)의 총독 자리에 앉히시고,

울트라마린(Ultramarine)들은 자으락스(Zarax) 주변에서만 주둔할 수 있도록 수를 쓰셨다.


벨티스(Beltis)는 아버지의 방문 앞으로 다가가면서, 도리깨에 남아있던 티롤(Tirol)의 부산물들을 닦아냈다.

아버지는 바깥 상황이 얼마나 나쁘게 돌아가는 지를 정확히 아실 필요가 없었다.

조금만 지나면 아버지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실 터였고,

그리되기만 하면, 언제나 그랬듯이 아버지는 이 모든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실게 분명했다.

그녀는 문을 열기 전 얼굴 주변 스카프를 다시 매만진 뒤, 방에 들어가자마자 잽싸게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순식간에 벌레들이 그녀를 포위했다. 

스카프를 단단히 여몄음에도 방 안에서 피어오르는 악취를 전부 막지는 못했다.

방 안에선 피처럼 붉은 적외선등 수십 개가 열선을 뿜으며,

가구들과 장식품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과거 한때 아름다웠던 방 안을 

그녀의 아버지가 난동을 피워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린 아수라장을 담담히 비추고 있었다.


부서져서 넘어진 의자와 무참히 찢어발겨진 커튼이 방바닥 여기저기에 무심히 놓여있었고,

벌레의 알과 고치들이 그 위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공기중에는 윙윙대는 나방과 딱정벌레들이 빼곡했고, 바닥에는 흰개미들이 들끓었다.

득시글거리는 벌레들과 그 움직임에 따라 점멸하는 붉은 불빛 때문에 

그녀조차 아버지가 어디에 계신지 바로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마침내 그녀는 아버지를 찾아냈다.

아버지는 그녀가 서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바닥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아버지는 완전히 나체 상태였지만,

드레드록 스타일로 마무리된 하얀 머리카락이 문신이 빼곡히 들어간 거대한 덩치 대부분을 가렸다.


아버지는 창궐하는 벌레떼 한중간을 멀뚱히 바라보면서,

계속 손을 앞으로 뻗어 자신이 낳은 벌레들을 잡아채 입으로 가져갔다.

멍하니 계속 벌레들을 잡아 맹렬히 씹고, 또 씹고 있는 중이었다.


"아버지,"


벨티스(Beltis)는 최선을 다해, 

아버지의 행동이나 방의 환경, 

그 어떤 곳에도 이상한 점이 전혀 없다는 듯이 매우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옷을 입으시고 저와 함께 나가시죠.

잠시 그만 멈추셔야 합니다.

아직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시다는 걸 저들에게 보여줘야만 한다구요.

아직 건재하시다는 걸 말이에요."


아버지는 벌레들을 먹는 걸 멈추지 않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그가 말을 시작하자, 반쯤 소화되거나 잘린 벌레들이 가슴께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놈들은 날 먹어 치울 수 있다고 생각해."


그는 입안에 남은 벌레들을 잘게 씹더니 꿀꺽 삼키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야."


그는 멈추지 않고 벌레들을 잡아 빈 입안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내가.

먹어 치운다.

모조리."


벨티스(Beltis)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아버지의 얼굴 앞에서 울부짖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면서 묵묵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도무지 먹혀들지가 않았다.


무슨 약이라도 먹여볼까?


아버지는 외견상, 육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건강해 보였다.

단지 그의 정신이 문제였다.


비밀을 엄수하도록 맹세시키고, 의사에게 아버지를 보여줄 수도 있었다.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먹일 것처럼 가장하고 증세를 설명해 처방만 받는 방법도 있었다.


얼핏 타당한 계획처럼 보였지만, 

그녀 스스로도 이건 그녀의 무의식이 이런 방법이 통할 거라고 자위하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보여주는 이상행동은 더 큰 광기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건 도시 전체에 만연하는 광기,

아니, 듀으라 우주항(Port Dura)을 전부 집어삼킨 광기였다.


벨티스(Beltis)는 난립하는 벌레들을 손으로 치워버리고 아버지의 이마에 입맞춤했다.

그리고는 깨끗한 물 한병을 아버지의 옆에 가져다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막 떠나려할 때쯤, 

아버지는 그녀의 팔을 붙잡고는 어느때보다도 밝고 의식이 또렷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벨티스(Beltis).

내가 모두를 구할거다.

내가 이것들을 여기에 잡아두면,

내가 이것들을 남김없이 모조리 먹어치우면,

절대 우리 도시를 넘보지 못할거다."


아버지는 그녀의 팔을 잡은 손에 한층 더 힘을 실었다.


"넌 이해하지?"


그녀는 최선을 다해 흘러나오는 눈물을 억눌렀다.


"이해해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놓아주었다.

무너지듯 벽에 다시 기대앉은 그는, 더 많은 벌레들을 입 안에 쑤셔박았다.

그녀는 문간에 서서 그녀의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멈추지 않고 격정적으로 벌레들을 먹어치우고 계셨지만,

그를 중심으로 주변에는 너무나 많은 벌레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에, 

오히려 아버지가 놈들의 한끼 식사처럼 보였다.


벌레들이 떼로 날아다니며 내는 윙윙소리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너무나 크게 울리기 시작해 그녀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 벌레들이 도시를 먹어치우고 싶어한다는 아버지의 망상이 

단순한 망상이 아니라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서리쳤다.


"우린 여기서 나가야해요,"


벨티스(Beltis)가 허공에 속삭였다.

말을 마친 그녀는 재빨리 방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아걸고, 그대로 건물 밖으로 내달렸다.


리바이어던(Leviathan) 제 1 장 으로…


댓글

  1. 역시 그놈의 티라니드 놈들이 문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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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니드가 다가오니 사람들이 미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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